수서(首序)와 후발(後跋)에 보면, 영조가 숙종의 승하(昇遐) 26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성덕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기 위하여 양정각(養正閣)에 앉아 헌관(獻官)으로 하여금 말을 받아쓰게 하여 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1권 1책(46장). 1434년(세종 16)에 갑인자를 다시 주조한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 활자로 간행하였다. 규장각도서·일사문고(一蓑文庫)·가람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1981년 홍문각에서 『속명의록언해(續明義錄諺解)』와 합책하여 영인하였다.
현재 전하고 있는 『어제상훈』(목판본, 22장)을 언해하여 간행한 것이다. 체재는 한문으로 된 본문과 그것을 언해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 본문에는 토를 달고 본문이나 언해한 부분의 한자에는 모두 그 음을 달고 있다.
목록은 수서·경천(敬天)·법조(法祖)·돈친(惇親)·애민(愛民)·거당(祛黨)·숭검(崇儉)·여정(勵精)·근학(勤學)·후발(後跋) 등으로 되어 있다.
언해의 특징을 살펴보면, ‘ㆍ’음은 제2음절 이하에서 소실된 듯 하나 보수적인 일면도 보이고 ‘집의 안ᄌᆞ’와 같이 혼란된 표기도 보인다. 또한 ‘볼띤댄, 공경ᄒᆞᆯ빼, 쉽꺼니와, 힘쓰며’와 같은 각자병서와 ‘才로ᄡᅥ, 남은 ᄠᅳᆺ이, 英廟ㅅᄞᅴ’와 같은 합용병서의 표기가 모두 나타난다.
구개음화는 대부분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간혹 ‘맛져란’과 같은 예도 보이고, ㅎ곡용체언의 경우에도 ㅎ을 잘 유지하고 있으나, ‘하ᄂᆞᆯ과’와 같이 ㅎ이 유지되지 않는 예도 있다.
강세첨사(强勢添辭) ‘-ᅀᅡ’는 ‘然後에아’와 같은 ‘-아’와 ‘然後에사’, ‘本固ㅣ라사’와 같은 ‘-사’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주격조사의 사용도 보수적인 편으로 ‘-이’, ‘ㅣ’가 쓰이고, ‘-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ㅣ’의 경우 개음절(開音節:모음으로 끝나는 음절로 받침 없는 음절)에서 ‘신해 이신 후에사’, ‘법도ㅣ 업서’와 같은 두 가지 표기방식이 보인다.
경어법의 체계나 인칭활용의 용법 등이 15세기 국어의 경우와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이것 역시 궁중에서 사용된 언어의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활용어미도 특징적인 것이 나타나며, 삽입모음은 비교적 혼동된 용법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선어말어미의 통합 순서가 ‘-더시-’에서 ‘-시더-’로 변화한 예도 나타나고, ‘므슴’에서 ‘무ᄉᆞᆷ’으로 변화하는 원순모음화(圓脣母音化)의 용례도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18세기 국어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나 당시의 다른 자료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보수적인 일면을 보여고 있다. 이는 아마도 궁중에서 사용한 일상어와 관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분철 표기를 따른 경향이 강하여 어간과 어미의 구별표기의식이 강하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