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관시고(夢觀詩稿)』는 조선 후기 역관(譯官)· 문인 이정주의 시문(詩文)을 엮어 1859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총 3권 1책의 활자본으로, 1859년(철종 10)에 이정주의 아들 이상익(李尙益)이 목활자로 간행한 초간본과 1891년(고종 28)에 이정주의 손자 이용준(李用俊)이 전사자(全史字)로 간행한 중간본 2종이 현전한다. 수록 작품은 350여 수로, 대부분 근체시이다.
이정주의 자는 석로(石老), 호는 몽관(夢觀)이다. 조선 후기에 손꼽히는 역관 집안이었던 우봉 이씨(牛峯李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정주 역시 21세 때인 1798년(정조 22)에 역과(譯科)에 합격하여 역관이 되었으나 40대 후반 이후로 세상과 담을 쌓고 독서와 작시(作詩) 활동으로 여생을 보냈다.
『몽관시고』는 3권 1책으로, 초간본(初刊本)과 중간본(重刊本)이 현전한다. 초간본은 ' 장혼자(張混字)'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이명예자(李命藝字)로 간행된 목활자본으로, 1859년(철종 10)에 간행되었다. 중간본은 전사자(全史字)로 간행된 활자본으로, 1891년(고종 28)에 간행되었다. 초간본은 권수에 이윤익(李閏益)이 1859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이상익(李尙益)이 1859년에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중간본은 초간본과 동일한 체제 및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권수에 김홍집(金弘集)이 1891년에 쓴 중간본 서문인 「중간몽관시고서(重刊夢觀詩稿序)」가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
초간본은 1859년(철종 10)에 이정주의 아들 이상익이 간행하였다. 『몽관시고』에 수록된 이상익의 발문에 따르면, 이정주의 시작품은 본래 5~6종의 시집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이정주의 시 뿐만이 아니라 이정주가 교유했던 다른 문인들의 시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정주의 시를 뽑아 일차적으로 정리한 뒤, 이상익의 사촌 형제인 이상적(李尙迪)의 상정(商訂)을 거쳐 350여 수의 작품을 선별하여 간행하였다. 중간본은 1891년(고종 28)에 이정주의 손자 이용준(李用俊)이 간행하였다. 초간본의 내용에서 시 2수와 김홍집의 중간서(重刊序)가 추가로 수록되었다.
『몽관시고』 권 1에는 108제(題) 118수(首), 권 2에는 91제 121수, 권 3에는 86제 111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 3 마지막에 산구(散句)가 있다. 수록된 작품은 대부분 근체시로, 편년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1825년 경부터 1847년 경까지 창작된 작품이 수록된 것으로 보이는 권 3을 제외하면, 각 작품들의 창작 연대를 정확하게 추정하기 어렵다.
이정주는 중국 역대의 시 중에서도 특히 만당(晩唐)과 만명(晩明)의 작품을 좋아했으며, 그의 시풍(詩風)에서도 이러한 점이 반영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청(淸)나라의 문인인 오숭량(吳嵩梁)은 그의 시에 대해 "유묘청경(幽眇淸警)"하다고 극찬하였으며, 김홍집 역시 "청경(淸警)하고 아운(雅韻)이 있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이정주는 19세기 중반기의 시단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이상적의 종숙(從叔)으로, 이상적의 부친인 이정직(李廷稷)과 함께 이상적의 시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정주는 현실에서 물러나 시 속에서 도피처를 찾아 티끌 한 점 묻지않는 정화된 분위기의 작품을 즐겨 창작하였고, 때때로 넘쳐나는 우분(憂憤)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한시사를 좌우할 만한 대가(大家)는 아니지만, 당시 중인들 사이에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으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였던 시인으로 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