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동. 무실은 수곡리를 지칭한다. 400여 년 전 전주유씨(全州柳氏) 수곡파(水谷派)의 파시조인 인의공(引儀公) 유선(柳善)의 아들 유성(柳城)이 터를 잡았다.
입향조 유성은 처음 낙향한 아버지와 영주에 살면서,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천전동(내앞)의 청계(淸溪)김진(金璡)의 사위가 되어 수곡에 입향하였다. 이 일대에 거주하는 전주유씨를 흔히 ‘무실유씨’라고도 한다.
무실정려각은 입향조 유성의 처 의성(義城)김씨의 정열(貞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인조 13년(1635)에 세운 비각이다. 열부 김씨는 남편이 28세로 사망하자 함께 죽고자 하였다. 그러나 젖먹이 두 자식을 생각하여 자결을 중단하고 삭발한 뒤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드리면서 냉방에서 침식하는 가운데 사계절 삼베옷(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삭망(朔望)마다 10여리 떨어진 임당(林塘)에 찾아가 ‘버선’ 한 켤레씩 남편의 묘 앞에 묻으며 3년간 시묘(侍墓)로서 정열을 다하였다. 삼년상을 마친 뒤 바로 단식을 시작하여 자결하였는데, 나이 27세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그의 열행(烈行)을 높이 평가한 임금께서 정려를 내려 비각을 세웠다. 비문은 ‘節婦故幼學柳城妻聞韶金氏之閣(절부고유학유성처문소김씨지각)’으로 새기고 각(閣)을 세워 열행을 추모하였다.
이 김씨에 대한 기록은 양파(陽坡) 유관현(柳觀鉉) 종가에 전하는 「가세영언(家世永言)」(楮紙 두루마리, 국문)에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적고 있다. 이 비각은 임하댐의 건설로 수몰지역에 들어가게 되어 1988년 안동시 임하면 수곡리 470-43번지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