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

경상북도 문경시 법정구역도
경상북도 문경시 법정구역도
인문지리
지명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시.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911.02㎢
인구
6만 7257명[2024년 12월 31일 기준]
행정구역
경상북도 문경시
시청 소재지
문경시 모전동
공식 홈페이지
https://www.gbmg.go.kr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문경시는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시이다. 예로부터 한양과 영남지방을 잇는 주요 길목이자 조선시대 역사적 교통로인 문경새재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석탄산업으로 번영했던 지역이지만, 석탄산업이 쇠퇴한 후 관광업과 농업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특산물로 사과와 오미자, 한우 등이 있다. 오미자는 인공 재배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도입되었으며, 현재 전국 최고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관광자원은 주로 문경새재 근처에 있으며, 지리적 특색을 활용한 자원이 많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11.02㎢, 인구는 6만 7257명이다.

정의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시.
개관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문경시는 동쪽과 남쪽은 경상북도 예천군 · 상주시, 서쪽과 북쪽은 소백산맥(小白山脈)을 경계로 충청북도 괴산군 · 제천시 · 충주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52′∼128°22′, 북위 36°31′∼36°52′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11.02㎢이고, 인구는 6만 7257명이다. 행정구역은 2개 읍[가은읍 · 문경읍], 7개 면[농암면 · 동로면 · 마성면 · 산북면 · 산양면 · 영순면 · 호계면], 5개 행정동[11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 행정 단위로 218개 행정리, 119개 법정리가 있다. 문경시청은 모전동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태백산맥(太白山脈)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나온 소백산맥의 중앙부에 속하여 지세가 대체로 험준하다. 크게 북부의 고산 지역, 중앙의 중산 지역 및 동남부의 구릉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고산 지역에는 8001,100m 내외의 험준한 산들이 분포하는데 대표적으로는 대미산(大美山: 1,115m), 운달산(雲達山: 1,097m), 황장산(黃腸山: 1,077.3m), 주흘산(主屹山: 1,106m), 조령산(鳥嶺山: 1,017m), 희양산(曦陽山: 999m) 등이 있다. 고산 지역과 중산 지역의 경계는 북부 산지에 발달한 동서 방향의 주1이다. 중산 지역은 굴봉산[399m], 군자봉[282.8m], 월방산(月芳山: 360.1m), 촛대봉[661m] 등의 2004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구릉 지역은 300m 내외의 산지가 주를 이룬다.

하천은 산계(山系)를 따라 발달했으며, 크게 서쪽에서부터 흐르는 영강과 북쪽에서부터 흐르는 금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강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속리산(俗離山: 1,058m)에서부터 발원하여 문경시 농암면 중앙을 흐르는 농암천, 가은읍 왕능리 희양산에서 발원한 양산천, 마성면 신현리 조령산에서 발원한 조령천 등과 합류하여 점촌 도심 지역의 경계를 흐르면서 연안의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금천은 동로면 황장산에서 발원하여 운달산과 사불산(四佛山: 912m)에서 시작되는 대하천과 산북면 대하리에서 합류하여 산북면, 산양면을 지나 영순면 달지리 삼강에서 낙동강에 합류된다.

지질은 주로 화강암질 편마암과 이를 주2으로 덮고 있는 조선계 대석회암통(朝鮮系 大石灰巖統)이 발달했으며, 여기에 관입한 화성암층에는 각종 금속 및 비금속 광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동남부의 평안계와 대동계 지층에는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

대석회암통 기반 지역과 조령천과 가은천이 합류한 영강이 주3 형태로 연결된 고산 지역의 석회암 분지가 있으며, 이곳에는 석회암의 용식 및 침전 작용에 의해 발달한 카르스트지형이 나타난다. 산북면과 호계면, 가은면 등지에 돌리네(Doline), 우발라(Uvala), 주4, 함몰 와지, 석회동굴 등의 카르스트지형이 분포해 있다.

기후는 아치형으로 둘러싸인 산세로 인해 지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분지형 산악기후(山岳氣候)에 속한다. 1991~2020년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1.9℃이며, 최고기온은 17.8℃, 최저기온은 6.6℃이고, 평균강수량은 1,294.9㎜이다.

역사

문경 지역의 초기 역사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산북면과 호계면 등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과 유적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생활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신석기시대에는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고 생활했을 것으로 보이며, 삼한시대에는 변한(弁韓)진한(辰韓)의 읍락 국가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내물왕(奈勿王: ?~402) 대 이후 비약적으로 팽창했는데, 문경 지역도 그즈음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관문현[지금의 문경읍], 가해현[지금의 가은읍], 호측현[지금의 호계면] 등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이들 세 지역은 각기 관산현 · 가선현 · 호계현 등으로 개명되어 고령군[지금의 상주시 함창읍]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이때 산양면 일대는 가유현으로 예천군에 속해 있었다.

통일신라 후반 지방 호족이 난립한 가운데, 상주 가은현[지금의 문경] 출신의 견훤(甄萱: 867~936)이 900년 완산주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일대]에서 후백제를 건립하고 동쪽으로 세력을 넓혀 가면서 이 지역은 견훤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그러나 뒤이어 후고구려를 건립한 궁예(弓裔: ?~918)가 남하하면서 문경은 후삼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문경은 통일신라의 핵심 지역인 경상도의 북서부 경계이자 전라도에서부터 충청도와 경상도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던 후백제, 경기 남부와 충청 북부를 점령하고 점차 남진하는 후고구려가 서로 차지하고자 했던 지역이었다. 왕건(王建: 877~943)의 역성혁명으로 고려가 건립된 이후에도 이 지역은 두 국가 모두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가 된다.

고려 태조(太祖)는 927년(태조 10) 근암성[지금의 산양면]을 함락시켰고, 이때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의 성주(城主) 흥달(興達: ?~929)이 귀부하자 크게 우대하였다. 이를 계기로 후백제에서 파견되어 온 관리들이 고려에 항복하였다. 이후 문경 지역은 고려의 지배체제에 들어가 관산현은 문희군으로, 가선현은 가은현으로 개명되었다.

1018년(현종 9) 이들 지역은 모두 상주(尙州)의 속현으로 편입되었으며, 문희군은 뒷날 문경군으로 개명되었고, 산양현에는 감무(監務)가 설치되었으나 1180년(명종 10) 폐지되었다. 1390년(공양왕 2) 문경군에 감무가 설치되면서 가은현을 속현으로 하였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 문경현에 현감이 설치되면서 상주 소속의 호계현이 합병되었고, 8도 체제가 정비되면서 신구(新舊) 관찰사의 교대 장소인 교구정(交龜亭)이 이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문경의 조령(鳥嶺)][새재]은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다. 문경현감 신길원(申吉元: 1548~1592)은 수십 명의 관병을 이끌고 현청을 수비하다 패배해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항거하다 순국하였다.

임진왜란 뒤에 새재는 국방상 요충지로 인식되어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1708년(숙종 34)에는 조령산성(鳥嶺山城)이 축조되었다. 1752년(영조 28)에 독진(獨鎭)이 설치되어 현감이 수성장을 겸하다가 다음 해에 별장(別將)을 두었다.

1871년(고종 8)에 이필제(李弼濟, 18251871)와 정기현(鄭岐鉉, 18371871) 등의 주도로 민중 항거가 일어나 지방관과 향리의 불법을 규탄하였고, 1877년에는 역모 사건이 발생하였다. 1895년(고종 32), 8도 지방 체제가 23부로 개편되고, 부(府) · 목(牧) · 군(郡) · 현(縣)을 모두 ‘ ’으로 단일화하는 행정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문경군은 상주 · 용궁 · 예천 등 인근 군에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이후 1896년 23부 체제가 다시 13도로 개편되면서 문경은 문경군으로 독립하였다.

1906년(광무 10) 예천군의 동로면(東魯面) · 화장면(化莊面), 상주군의 산서면 · 산남면 · 산동면 · 산북면 · 영순면이 문경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산양면과 영순면의 일부가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한편 1907년 이래 지역 유지들이 신식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많이 양성하였으나, 일진회가 만든 도천학교의 경우 친일 성향이 강한 데다 민폐를 많이 끼쳐 의병들이 소각하기도 하였다.

항일 의병 투쟁도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당시 8도 의병 총대장 이인영(李麟榮: 18671909) 및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 18581908) 등이 문경 출신이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4월 13∼15일 산북면 주민들이 갈평장(葛平場)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49년 문경군청이 문경면 하리에서 호서남면의 점촌리로 이전해 오면서 이 지역의 발전이 급속화되었고, 그 결과 1956년 호서남면이 점촌읍으로 개칭, 승격하였다. 1973년 호계면 봉정리가 산양면에 편입되고, 문경면과 가은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점촌읍이 호계면 오암리의 일부를 편입하고 시로 승격되면서 점촌시와 문경군으로 분리되었으며, 이 시기를 전후해 석탄산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며 지역의 경제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1986년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일부가 점촌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점촌시와 문경군이 합쳐 도농 통합형 문경시로 개편되었다.

유물 · 유적

문경시의 유물 · 유적은 국가지정문화유산 33개, 경상북도 지정문화유산 76개, 문경시 지정문화유산 6개가 있다. 국가지정문화유산은 국보, 보물, 국가민속문화유산,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국가무형유산 및 등록문화유산으로 구분된다.

문경시의 국보로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聞慶 大乘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등 2개가 있다. 보물은 사인비구 제작 동종 - 문경 김룡사 동종(思印比丘 製作 銅鍾 - 聞慶 金龍寺 銅鍾),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聞慶 內化里 三層石塔), 문경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聞慶 大乘寺 金銅觀音菩薩坐像) 등 총 14개가 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는 문경 평산신씨 묘 출토복식(聞慶 平山申氏 墓 出土服飾)문경 최진 일가 묘 출토복식(聞慶 崔縝 一家 墓 出土服飾) 등이 있다.

문경 조령 관문(聞慶 鳥嶺 關門)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경 토끼비리(聞慶 토끼비리), 문경새재(聞慶새재) 등 총 2곳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문경 화산리 반송(聞慶 華山里 盤松) 1주, 문경 대하리 소나무(聞慶 大下里 소나무) 1주, 문경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聞慶 長水黃氏 宗宅 탱자나무) 2주 등 3건이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사기장(沙器匠)[전승자 김정옥], 문경 한지장(聞慶 韓紙匠)[전승자 김삼식] 등이 있는데, 이 중 사기장과 한지장은 전수교육관도 함께 운영 중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는 구 문경금융조합 사택(舊 聞慶金融組合 舍宅), 문경 구 가은역(聞慶 舊 加恩驛), 문경 구 불정역사(聞慶 舊 佛井驛舍), 『김룡사 사료수집(金龍寺 史料蒐集)』, 『대본산 김룡사 본말사 연혁』원고(大本山 金龍寺 本末寺 沿革 原稿), 문경 가은양조장(聞慶 加恩釀造場) 등 6개가 있다.

경상북도 지정문화유산은 유형문화유산, 민속문화유산, 기념물, 무형유산, 문화유산자료로 구분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는 홍귀달선생신도비(洪貴達先生神道碑), 황방촌유물(黃방村遺物), 문경대승사사면석불(聞慶 大乘寺 四面石佛) 등 총 33개가 지정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는 문경 망댕이 사기요(聞慶 망댕이 沙器窯), 문경 장수황씨 종택(聞慶 長水黃氏 宗宅) 등 2개가 지정되어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로는 주흘산조령관문일원(主屹山鳥嶺關門一圓), 문경모산굴(聞慶茅山窟), 이강년생가지(李康秊生家址), 박열의사생가지(朴烈義士生家址),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義兵將 申泰植 生家址) 등 총 5개가 있다.

경상북도 무형유산으로는 문경호산춘(聞慶湖山春)[민속주], 문경 한지장[전승자 김춘호] 등 9건이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는 문경향교대성전(聞慶鄕校大成殿), 소양서원(瀟陽書院), 문경관음리석불입상(聞慶觀音里石佛立像) 등을 포함하여 총 27건이 있다.

문경시에서 지정한 보호문화유산은 문경 만산재, 문경 부훤당고택, 선성김씨 고택, 문경새재아리랑, 점촌동 침례교회 예배당, 인천재씨 화수헌 종택 등 6건이 있다.

교육 · 문화

전통 시대 관학 교육기관으로는 1392년(태조 1) 문경읍 교촌리에 창건된 문경향교가 있다.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가 1598년(선조 31) 대성전을 중건하고, 1676년(숙종 2)에 명륜당을 재건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사학 기구인 서재로는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이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에 설립한 영고서재(潁皐書齋)가 있었다.

서원은 1544년(중종 39)에 산북면 근암리에 설립된 근암서당에서 1655년(효종 5)에 승격된 근암서원(近巖書院)이 대표적이다. 근암서원은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4년에 복원되었다. 이 외에도 1677년(숙종 3)에 설립된 한천서원(寒泉書院), 1713년(숙종 39)에 설립된 소양사우(瀟陽祠宇), 1795년(정조 19)에 설립된 능연서원(能淵書院) 등이 있었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 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다.

서당으로는 가은읍 작천리에 옥봉서당(玉峰書院), 산북면 창구리에 창구서당(蒼邱書堂), 산양면 반곡리에 반곡서당(盤谷書堂), 호계면 견탄리에 호계서당(虎溪書堂)이 있었으나 서당으로서의 기능은 다하지 못하였다.

근대 교육기관 중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기까지에 세워진 학교는 없으며, 일제강점기 초인 1912년에 문경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다. 이 학교의 전신은 1910년(융희 4) 4월에 설립한 경원학교를 읍내의 육영학교와 병합한 경옥학교였다.

1921년에 농암면에 농암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한 뒤 1면 1교 설립 정책에 따라 1930년에는 문경면에 문경공립보통학교, 산북면에 산북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 1934년에는 문경면에 문경서부공립보통학교, 호서남면에 호서남공립보통학교, 영순면에 영순공립학교가 세워졌고, 1935년에는 호계면에 호계공립보통학교, 1943년에는 호서남면에 유곡간이학교 등이 세워졌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1948년 문경중학교, 1949년 문경농림학교, 1951년 문경고등학교, 1952년 산북중학교, 1954년 청암중학교, 1955년 동로중학교, 1956년 문경여자중학교, 1957년에는 가은중학교 등이 각각 설립되었다.

2025년 3월 10일 기준 문경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7개, 중학교 9개, 고등학교 6개, 전문대학 1개가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모든 읍과 면에 적어도 1개씩은 있으나[분교 포함], 중등 교육기관은 대부분 점촌1동~점촌5동에 있어 지역별 편차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도서관과 공연 시설, 문경새재도립공원 등이 있다. 도서관은 문경시립중앙도서관, 문경시립모전도서관, 문경시립문희도서관, 경상북도교육청 점촌도서관 등 4개가 있는데, 시립도서관은 주로 시민들의 독서와 문화생활을 위한 곳이다. 교육청 산하의 도서관은 도서관 본연의 기능 외에 평생교육센터를 운영하여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평생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연 시설로 문경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하여 4개의 시설이 있으며, 주요 문화 행사는 대부분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된다. 박물관은 옛길박물관, 문경도자기박물관, 문경석탄박물관, 잉카마야박물관, 문경자연생태박물관 등이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조선 전기 태종(太宗: 1367~1422) 대부터 개척된 조령로를 중심으로 조성된 곳으로, 1979년에 경상북도 제1호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 공원에는 문경새재박물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자연생태공원, 옛길박물관 등이 있으며, 문경 조령 관문(聞慶 鳥嶺 關門)은 196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문경새재도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 여성, 아동 · 육아, 청소년 등으로 구분하여 지역복지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노인인구 비율이 34%에 달하는 초고령사회인만큼 노인복지시설이 가장 많다.

문화 축제로는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문경찻사발축제, 문경오미자축제, 사과축제, 문경약돌한우축제 등이 있고, 주요 행사로는 ‘전설의 귀신 in 문경’, ‘문경 달빛사랑여행’, ‘문경에코월드 은성탄광 달빛여행’, ‘문경가은영화제’와 ‘문경 매직판타지 로드벤처’ 등이 있다.

민속 · 설화 · 민요

민속

문경 지역의 전통 민속놀이로는 모산굴 기세배, 소야리 동제, 호계 부곡리 별신굿, 석전놀이(石戰놀이) 등이 유명하다.

모산굴 기세배는 원래 문경 성밑마을에서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게 희생된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시작된 위령제였는데, 기세배를 지내고 나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집안도 편안해진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주변 마을에서도 참가하게 되었다. 참가 마을 전체가 굴을 향해 위령제 형식의 세배를 올리고 본마을인 성저리 마을의 기에 세배를 한 후, 굴 안에서 ‘굴빌기’를 하며 각 마을의 풍물패가 각자의 풍물을 자랑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행사는 지역 최대의 대동놀이였다.

소야리 동제는 산북면 소야리에서 열리는 정월 동제이다. 매년 정월 초닷새에서 대보름 사이에 산신, 천신, 성황신(城隍神)에게 마을 주민의 평안과 풍농을 기원한다. 호계 부곡리 별신굿은 호계면 부곡리에서 행했던 마을 공동의 제의이다. 이 일대의 자연 촌락 중 가장 큰 와얏골에서 10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풍농을 기원한다.

석전놀이는 문경 지역만의 독특한 민속놀이로, 고구려 때 이미 국가적 연중행사로 시행되었다고 전한다. 주로 마을끼리 수백 보의 거리를 두거나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돌을 던지는 놀이로, 돌을 피해 도망가는 편이 지게 된다. 이는 전투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연무의 뜻이 내포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신라고려 때에는 이를 전투 기술로 활용한 군대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산양면 현리와 산북면 서중리 사이에서 석전이 성행하였다. 추석을 전후로 두 마을의 경계인 금천을 사이에 두고 각각의 마을 사람들이 작은 돌멩이를 갖고 양쪽으로 모이는데, 서로 포진하고 기다리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함성을 지르며 상대에게 돌을 던지면서 진퇴를 거듭하고, 적진 중에 표적이 되는 물건을 빼앗는 것으로 승패를 결정하였다.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 때는 삼포에 거주하던 일본 거류민의 폭동을 물리치는 데 이 석전술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 매년 정월에 석전놀이를 했지만, 일제강점기에 금지령이 내리면서 점차 없어졌고, 한국전쟁을 전후로 전승이 중단되었다.

설화

문경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는 주로 지역[지명]과 인물, 사건 관련 이야기들이다. 지역의 경우 문경새재와 관련한 설화가 많고, 인물의 경우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가은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설화가 많다. 물론 이 둘이 결합된 형태의 설화도 많이 전한다. 특히 모든 지역에서 지명 유래와 관련한 설화가 많다.

예를 들어 마성면 못고개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 ?~1598)이 마을 뒷산 고개를 넘다가 이 고개의 한 바위에서 자신보다 더 훌륭한 장수가 태어날 것으로 생각하여 그 바위에 못을 박아 못고개라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가은읍 갈전리 금하굴은 견훤의 탄생 설화가 내려오는 곳이다. 한 처녀가 밤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초립동이와 동침하여 임신하였는데, 그 정체가 금하굴에 사는 큰 지렁이였다고 한다. 이 처녀가 낳은 아이가 바로 견훤이었으며, 견훤이 태어났을 때 동굴에서 금빛이 나오고 풍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서 사람들이 ‘금하굴’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농암면에서 전하는 말바우 이야기 역시 견훤과 관련한 지명유래담이다. 견훤이 어렸을 때, 바위 밑 굴에 야생마가 살았다. 성질이 매우 난폭하고, 농작물에도 피해를 주어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야생마를 잡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견훤도 이 백마를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길들여서 함께 무예 연습을 하여 최고의 명사수가 될 수 있었다.

어느 날 견훤은 자신의 활쏘기 실력과 백마의 달리기 실력을 견주어 보기 위해 말바우에서 아차동으로 활을 쏘았다. 실제로 말바우 연천상땀 동네 북쪽 원고개, 성저리, 아차동은 일직선상에 있다. 견훤은 백마가 자신이 쏜 화살보다 늦게 도착하면 백마의 목을 베기로 했다. 그런데 백마가 산꼭대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살이 박혀 있었다.

이에 견훤은 분노하여 백마의 목을 베었다. 그런데 이후 화살이 도착하여 꽂혔다. 산꼭대기에 박혀 있던 화살은 전날 연습으로 쏘았던 것이었다. 이를 보고 견훤이 “아차”라고 탄식을 했다고 전한다. 이후 백마가 살던 굴의 바위는 말바우, 백마의 목을 벤 산은 아차산, 그 마을은 아차마을[아차동]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문경새재와 관련한 설화로는 성황신과 산신령에 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재에는 성황당(城隍堂)과 산신당(山神堂)이 하나씩 있는데, 이 두 곳에 대한 설화이다. 성황신 설화는 조선시대 문신 최명길(崔鳴吉: 1586~1647)과 관련이 있다.

최명길이 소년 시절, 안동부사로 부임한 외삼촌을 찾아가는 길에 새재를 지나게 되었다. 이때 문경새재 성황신이 그에게 동행을 요청하였다. 성황신은 자신의 치마를 훔쳐 간 안동의 한 좌수의 딸을 죽이러 가는 길이었지만, 최명길의 요청을 받아들여 좌수의 딸을 살려 주었다.

이때 성황신은 최명길에게 “공은 훗날 영의정에 오를 것이고, 병자호란이 일어나면 큰 공을 세울 것입니다. 앞으로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는 흥할 것이니, 부디 청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조선의 사직을 보존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최명길은 성황신이 말한 대로 벼슬에 올라 영의정이 되었고, 병자호란 때 화친(和親) 정책을 펼쳐서 국난을 수습하였다.

산신당은 조선 태종(太宗: 1367~1422) 때부터 개척을 시작한 조령길과 관련이 있다. 조령을 넘던 역졸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일이 발생하자, 태종은 짐승이 자신의 백성을 해하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호랑이를 잡아 오라고 명령하였다. 어명을 받은 금부도사는 조령으로 가서 호랑이를 잡으려 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금부도사는 산신당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어명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그날 밤 호랑이의 울부짖는 포효 소리가 들렸고, 이 소리를 들은 금부도사가 주흘산에 올라가 보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금부도사는 호랑이 가죽을 갖고 조정으로 돌아갔고, 이때부터 조령에서는 호랑이로 인한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민요

2010년에 진행된 『한국구비문학대계』 개정 · 증보 사업 현장 조사에 따르면, 문경 지역에서는 170여 편의 민요가 채록되었으며, 노동요동요 · 주무요(呪巫謠) · 유희요 · 유흥요 등이 많았다. 노동요에는 남요(男謠)로서 「모심기노래」 · 「논매기노래」 · 「보리타작노래」가 있고, 부요(婦謠)로는 「베틀노래」 · 「삼삼기노래」 , 동요로는 「꿩노래」 · 「기러기노래」 · 「꼬리따기노래」 등이 많이 불렸다. 또 주무요로는 「지신밟기」 · 「성주풀이」 · 「지짐노래」 · 「행상소리」 · 「달구질 노래」 등이 있고, 유희요로는 「달강노래」 · 「자장가」 등이 있으며, 유흥요로는 「새재노래」 등이 유명하다.

이러한 노래들은 혼자 부르는 노래와 서로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로 구별할 수 있다. 혼자 부르는 노래는 주로 부요나 유흥요의 경우이고, 서로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는 노동요의 남요나 주무요 등으로 선소리나 메김소리를 받아 뒷소리로 부르게 되는데, 이것을 반복해서 부른다.

한편 문경 지역에서도 아리랑이 전래되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1896년 헐버트(H. B. Hulbert)가 서양 악보로 최초 채록한 아리랑이 ‘문경 아리랑’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아리랑의 후렴을 수반한 아리랑요로는 「새재노래」, 「문경새재소리」 등이 있다. 2010년 『한국구비문학대계』 개정 · 증보 사업으로 수행된 문경 지역 조사에서 여러 편의 아리랑이 발견되었고, 후렴이 없는 아리랑 또한 상당수 전승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산업 · 교통 · 관광

산업

2021년 기준 경지면적은 106.85㎢이며, 이 중 논이 44.57㎢, 밭이 63.65㎢를 차지하고 있다. 산악 지역이 많아 경지면적은 적은 편으로, 과거에는 논농사를 더 많이 지었으나 최근 들어 밭농사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논농사는 금천 · 조령천 · 영강 주변의 평야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며, 밭농사는 저산성 구릉지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등의 잡곡과 사과 · 배 · 포도 · 감 등의 과실류, 수박 · 호박 · 오이 · 토마토 · 옥수수 등의 채소류, 참깨 · 들깨 · 오미자 등의 특용작물이 있다. 최근 사과와 오미자 등을 활용한 가공식품 개발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오미자는 1996년 인공 재배 시범 사업을 통해 도입된 이후 2010년대부터 전국 생산량의 약 40% 이상을 차지하며 최대 주산지로 자리 잡았다. 오미자청, 음료, 특산주 등 다양한 가공제품이 개발되어 식품화되고 있으며, 이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건강 기능성 식품 산업 육성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축산의 경우 한우 · 젖소 · 돼지 · 닭 등이 주로 사육되며, 양봉은 경제성이 있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나 2022년 기준 약소하게 감소하였다. 이 중 미네랄이 풍부한 암석인 거정석을 첨가한 사료로 키운 한우와 돼지에 약돌이라는 이름을 붙여 ‘문경약돌한우’와 ‘문경약돌돼지’라는 브랜드로 출하하고 있다. 임산물로는 주로 주5)가 많으며, 취나물 · 다래순 등의 산나물과 오가피 · 산양삼 · 도라지 등의 약용식물도 많이 재배하는 편이다.

문경 지역은 지질 구조상 많은 석탄이 매장되어 있어 한일병합조약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탄광 개발이 시작되었다. 1926년 ‘문경탄광’이 문을 연 이래 광업은 오랫동안 지역의 주요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한창때는 60여 개 이상의 탄광에서 석탄이 생산되며 지역경제를 이끌었지만, 1986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사업으로 크고 작은 탄광이 모두 문을 주6.

산업 단지로는 가은읍, 영순면, 산양면, 마상면에 7개의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총 82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 농공단지에는 주로 식품 가공업, 농기계, 화학 관련 산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점촌 지역에는 2개의 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총 17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이들 역시 식품 가공업과 알루미늄 산업 관련 기업들이다. 제조업이 크게 발달한 도시는 아니지만, 최근 조성된 일반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제조업체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는 도자기와 한지(韓紙), 가주(家酒), 주7을 들 수 있다.

도자기 산업은 문경읍 진안리 · 관음리 · 갈평리 일대에서 활발한데, 이는 적토 · 백토 · 사질점토 · 도석 등의 원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한지는 닥나무를 채취하여 만드는 것으로 모든 작업이 수공업으로 이루어진다. 문경 지역에는 한때 20여 곳에서 한지를 만들었지만, 2025년 현재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한지장 보유자 김삼식이 운영하는 삼식지소(三植紙所)에서만 제조되고 주8.

가주로는 산북면 대하리의 장수 황씨(長水 黃氏) 문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문경호산춘(聞慶湖山春)이 유명하다. 1990년에 민속주로 정식 등록되어 문경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 브랜드가 되었고, 1991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현 경상북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현대적인 시설의 양조장에서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청려장은 명아주라는 풀로 만드는 지팡이다. 가볍고 단단하며, 울퉁불퉁한 눈결이 장중에 수지침 역할을 하여 짚고 다니면 중풍과 요통에 좋다는 속설이 있으며,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전통시장인 오일장으로는 끝자리가 2 · 7일에 열리는 문경시장, 4 · 9일에 열리는 가은아자개장터, 3 · 8일에 열리는 동로시장, 5 · 10일에 열리는 농암시장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고, 상설 시장으로 중앙시장이 있다.

문경시장은 1930년대에 개설되었다. 다른 읍이나 면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점촌과도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때 크게 번성했으나, 현재는 그 기능이 많이 쇠퇴하였다. 주흘산 등지에서 채취되는 산채와 지방 특산물이 주로 거래된다.

가은아자개장터의 원래 이름은 가은장으로, 문경시에서 다소 외딴곳에 자리하였지만 광산촌을 끼고 있어 독립된 시장권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시장의 기능도 쇠퇴하였다. 2011년 체험형 문화관광시장으로 재개장하면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玆蓋: ?~?)가 이곳 가은읍 출신이라 가은아자개장터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동로시장은 벌재장으로도 불리며,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던 곳이다. 점촌과 거리가 먼 산지에 있으나, 과거에는 충청북도 단양군 주민들도 이용할 정도로 독립된 시장권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주9 현상이 가속화되고 교통이 발달하여 인근 도시와의 왕래가 자유로워지면서 시장 기능이 약화되었다.

농암시장은 1900년대 초반부터 열리던 장으로 19601970년대까지 발전했으나, 많은 사람이 도시로 떠나면서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중앙시장은 1950년대 이후부터 상설 시장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점촌 지역의 중심 시장으로 19701980년대에 번성했으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주변이 광산이 폐광되며 쇠퇴하였다.

교통

문경 지역은 조선시대 한양과 경상도를 연결하는 주요 관문 중 하나였던 조령이 위치하여 교통의 요지로 불리던 곳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이 활성화되었으나, 경부고속철도추풍령 일대를 우회하면서 한때 지역 접근성이 약화되었다. 이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수도권과 경상도 일대로의 접근성이 다시 좋아졌다.

철도의 경우, 석탄산업이 활황일 때에는 점촌역에서 경북선문경선이 분기하고, 문경선 진남역에서 가은선이 분기하는 등 발전된 모습을 보였지만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며 급속히 쇠퇴하였다. 무궁화호가 경상북도 김천시 · 상주시 · 예천군 · 영주시 방면으로 1일 5회 왕복 운행하며, 2024년 11월 중부내륙선 충주역–문경역 구간이 정식 개통되어 KTX-이음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였다. 추후 서울과의 연결도 목표로 하고 있어 지역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내버스는 좌석 9개 노선, 일반 7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지만, 이용 승객은 많지 않다, 문경시는 지역민의 대중교통 비용을 줄이고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고자 2025년 1월 1일부터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를 시행하고 있다. 고속버스는 서울행 노선만 운영 중이며, 시외버스는 인근 충청도 · 경상도 지역과 연결되는 노선이 다수 존재한다. 철도망이 부족한 대신 버스 노선이 많으며, 대부분 여러 정류장을 거치는 완행 형태로 운행된다.

관광

문경시는 전반적으로 험준한 산악 지형에 자리하여 관광자원의 상당수가 문경새재를 비롯한 산지에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문경새재길을 비롯한 다양한 등산로와 문경시에서 선정한 문경8경 등이 있다.

문경새재길은 조선시대 영남지방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의 일부로, 제1관문 주흘관(主屹關)에서부터 제2관문 조곡관(鳥谷關)을 지나쳐 제3관문 조령관(鳥嶺關)까지 총 6.5㎞에 이르는 길이다. 문경8경은 새재계곡, 선유동계곡, 용추계곡, 쌍용계곡, 진남교반, 운달계곡, 경천호, 봉암사 백운대(白雲臺)로 구성되며, 대부분 산지에서 발달한 계곡과 저수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등이다.

문경시는 2007년 문경관광진흥공단[지금의 문경관광공사]을 설립하고 문화, 휴양, 축제 및 도시 레포츠 관광의 명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유한 자연 및 역사 자원과 더불어, 석탄산업 유산 등을 활용해 단순한 관람 중심을 넘어 체험형 관광자원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체험형 관광시설로는 문경철로자전거, 문경관광사격장,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문경새재 어드벤처파크, 문경에코월드, 문경단산 관광모노레일 등이 있다. 이들 관광자원과 기존 자연경관을 연계한 ‘문경 스탬프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문경철로자전거는, 20여 년 전까지 석탄을 운반했지만 석탄산업 사양화로 운행이 정지된 철로를 자전거길로 개발하여 관광 자원화한 것이다. 문경관광사격장은 클레이사격, 권총 · 공기총 사격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문경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레포츠 체험 가운데 하나이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은 원래 2000년 한국방송공사[KBS]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제작을 위하여 조성한 촬영장이다. 이 지역은 조령산주흘산의 산세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의 송악산(松岳山: 488m)과 유사하고, 옛길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사극 촬영지로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원래의 세트장이 철거되고 조선시대의 거리와 건축 양식을 재현한 새로운 세트장이 2008년에 완공되었다. 이곳은 이후로도 다수의 사극과 영화가 촬영되는 등 문경시의 대표적인 촬영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문경새재 어드벤처파크는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 쪽에 있는데, 주흘산의 전경을 보면서 숲속에서 집라인을 비롯한 여러 체험을 할 수 있게 개발되었다. 문경 에코월드는 기존의 문경석탄박물관주10을 포함하고, 녹색 문화 체험관인 에코타운과 야외 체험 시설인 자이언트 포레스트를 추가 조성한 테마파크이다. 문경단산 관광모노레일은 문경의 중심에 위치한 백두대간(白頭大幹) 중 한 곳인 단산(檀山: 956m)에 설치되어, 주변에 펼쳐진 문경의 명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생태체험마을로 새재팔영사과 정보화마을, 궁터별무리마을, 문경오미자체험촌, 문경큰사람마을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들 마을에서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농촌 체험, 가공 체험, 생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읍면동

가은읍(加恩邑)

문경시의 서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2.49㎢이고, 인구는 3,884명이다. 가은읍 행정복지센터가 왕능리에 있고, 가은읍 북부출장소는 상괴리에 있다.

본래 관문현 · 관산현 · 가해현으로 부르다가 통일신라 중기인 750년(경덕왕 9)경 고령군(古寧郡)에 예속되었고, 고려 전기인 1020년(현종 11)경 가은현(加恩縣)이라 개칭하고 상주군의 속현이 되었다. 1390년 문경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909년(융희 3) 가동면 등 5개 면이 3개의 면으로 폐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3개 면을 통합해 가은면이 되었다. 1963년에 농암면의 민지리를 편입하고, 1973년 경상북도 상주군의 이안면 저음리를 편입해 읍으로 승격하였다.

소백산맥의 동남 사면에 위치해 북서쪽은 소백산맥의 뇌정산(雷霆山: 991m) · 희양산 · 시루봉[915m] · 둔덕산(屯德山: 969m), 동남쪽은 어룡산(魚龍山: 617m) · 작약산(芍藥山: 763m) 등으로 둘러싸인 산간분지이며, 분지의 낮은 지대는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

1970년대 초 문경 탄전의 중심 취락으로 발달하였으며, 최근에는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간분지에 자리해 조령을 비롯한 산과 계곡이 발달해 있으며, 곳곳에 오래된 사찰이 많다.

경지면적은 15.89㎢로 가은읍 총 면적의 약 10.5%이고, 임야는 128.86㎢로 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경지율은 낮은 편이다. 농산물은 쌀 · 보리와 오미자 생산이 많다. 지역 특산물은 사과, 표고버섯 등의 농산품과 유기 제품이 유명하다. 가은읍에 유기장[국가무형유산] 이봉주 보유자가 만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납청방짜유기촌이 자리한다.

완장리의 선유동은 충청북도 괴산군의 선유동과 함께 소백산맥으로 분리되어 있는 비경으로, 1㎞에 달하는 아홉 굽이의 계곡[선유구곡]으로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분교 2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문경읍(聞慶邑)

문경시의 서북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6.51㎢이고, 인구는 6,660명이다. 문경읍 행정복지센터가 상리에 있고, 문경읍 갈평출장소가 갈평리에 있다. 1949년 문경군청이 점촌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문경 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삼국시대부터 문경읍은 정치 · 군사 · 교통 · 문화의 중심지로서 현아의 소재지였다. 신라 때는 관산현에 속했으며, 고려 전기에 문희(聞喜)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후기에 문경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곡면과 읍내면을 병합해 문경면으로 하였으며, 1932년 신북면을 병합하였다. 1973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996년에 개발촉진지구, 폐광지역진흥지구로 지정되었다. 1998년에 문경새재가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서쪽의 소백산맥충청북도와 분수령을 이루며, 주흘산과 대의산(大義山, 1,110m) 등이 위치한 백두대간의 산악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조령과 하늘재 등이 자리해 예로부터 영남지방의 관문 역할을 해 왔으며, 이화령을 통과하는 국도가 개통되면서 남북 간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한편, 산간에서 발원한 신북천이 동남쪽으로 흘러 조령천에 합류된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17.80㎢[11%], 임야는 130.92㎢[84%], 기타 7.80㎢[5%]로 경지율이 낮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외에 사과와 감이 많이 재배되고, 산나물과 송이버섯 등도 유명하다. 가축으로는 한우와 닭을 주로 사육하고, 양봉도 이루어진다.

고요리에는 과거 무연탄을 생산하는 광산이 여러 개 있었다. 또한 도자기의 원료인 적토 · 백토 · 사질점토 등이 생산되어 요업이 발달하였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문경새재 오픈세트장과 패러글라이딩 체험장인 문경활공랜드, 문경종합온천 등의 관광자원이 개발되면서 지역경제가 다소 활성화되는 추세이다.

교통은 산업철도로서 문경선경북선에서 분기한다. 2024년 11월에 중부내륙선 충주역–문경역 구간이 정식 개통되어 KTX-이음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였다. 이에 경상북도는 문경 역세권 도시개발사업 개발계획을 승인하였는데, 수도권 등지에서 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문경종합온천과 문경새재도립공원 등이 연계된 관광산업 활성화가 기대된다.

중부내륙고속도로는 북쪽으로 이화령을 넘어 충청북도와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남부 지역으로 이어진다. 문화유산으로 혜국사(惠國寺), 고모산성(姑母山城), 문경향교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3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농암면(籠巖面)

문경시의 남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03.47㎢이고 인구는 2,508명이다. 농암면 행정복지센터가 농암리에 있다.

신라고려 전기에는 가은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고려 후기 공양왕(恭讓王: 1345~1394) 대에 문경현에 병합되어 가서면과 가남면이 되었다가 문경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서 · 가남을 통합하고, 갈동에 있는 농바우의 이름을 따서 농암면으로 하였다. 이후 1995년 문경시 농암면이 되었다.

조항산(鳥項山: 951m) · 청화산(靑華山: 984m) · 도장산(道藏山: 828.5m) · 중산 · 칠봉산(七峰山: 600m) 등이 면계에 있다. 면내에서도 시루봉과 연엽산(蓮葉山: 775m) 등 높은 산이 많다. 산지 사이를 농암천과 관기천이 동서로 흐르면서 하천을 주11해 농암리 부근에 큰 충적평야를 발달시켰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10.52㎢[10.2%]이고, 임야는 58,54㎢[84.3%], 기타 5.65㎢[8%]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산촌이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등을 재배하며, 특용작물로 엽연초와 배추, 오이를 많이 생산하고, 돼지 · 사슴 · 산양 · 닭도 많이 키운다.

진남교반으로 흘러드는 농암천 일대는 수석 산지로 유명해, 주변에 수석 판매점 간판이 줄지어 있다. 광산물로는 장석이 생산된다. 교통은 국가지원지방도 32호선과 농암길이 농암리를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가은읍 · 문경읍과 연결되고 남서쪽으로는 상주시와 연결된다. 조항산 불당곡에 조선 중기까지 절이 있었으나 폐허가 되어 지금은 기왓장만 발견되고 있다.

화산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경 화산리 반송이 있는데, 한 뿌리에서 여섯 그루의 소나무가 솟아 있어 ‘육송’이라고도 한다. 종곡리의 속리천과 농암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1㎞에 걸쳐 수령 200∼300년 된 아름드리 노거송들이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대정공원이 있다. 도장산 심원사(深源寺), 청화산 원적사(圓寂寺), 쌍용계곡 등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가 있다.

동로면(東魯面)

문경시의 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42.10㎢이고, 인구는 1,916명이다. 동로면 행정복지센터가 적성리에 있다.

신라 초기에는 난산현으로 불렸으나 통일신라 중기인 경덕왕(景德王: ?~765) 대에 안인현이라고 하였다. 고려 때는 작성현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예천군 동로소면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경군에 편입되어 동로면이 되었다. 이후 1932년에 산북면을 병합하고 1963년 수평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95년에 문경시 동로면으로 통합되었고, 1996년에 수평출장소가 폐지되었다.

문수봉(文繡峰: 1,161m) · 공덕산(功德珊: 912m) · 국사봉(國師峰: 727.6m) · 매봉[865m] 등이 면계에 있으며, 면내에는 황장산 · 천주봉(天柱峰: 836m) 등의 높은 산이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문수봉에서 발원하는 금천은 면의 중앙부를 곡류하면서 남류하고, 양안에는 좁은 평야와 하안단구(河岸段丘)가 형성되어 있으며, 높은 산이 많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25.59㎢[18%]이고, 임야는 113.27㎢[79.7%], 기타 3.24㎢[2.3%]로 이루어져 있다. 2006년 전국 최초로 오미자산업특구로 지정되어 현재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매년 오미자 축제도 개최하는 등, 오미자가 지역의 대표 특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사과, 고추 등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낙동-단양 간 지방도가 면을 남북으로 통과하며, 동로-괴산, 동로-예천 등지로 통하는 군도가 있다. 공덕산에 변승사가 있으며, 마광리에 경주 손씨(慶州 孫氏) 집성촌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 중학교 1개가 있다.

마성면(麻城面)

문경시의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5.1㎢이고, 인구는 3,279명이다. 마성면 행정복지센터가 모곡리에 있다.

신라 중기까지 관문 · 관산이라 불리던 지역이며, 고려 때는 문희현 · 문경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남면과 신동면 등 2개 면이 병합되어 마고성면으로 개칭했다가 1916년 마성면으로 하였다.

중앙 저지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백화산(白華山: 1,064m) · 옥녀봉(玉女峯: 400m) · 봉명산(鳳鳴山: 697m) · 오정산(烏井山: 810m) · 어룡산 · 뇌정산 등이 면의 경계를 둘러싸고 있고, 면내에는 성주산(聖主山: 713m) · 능곡산(陵谷山: 571m) 등의 높은 산이 있다. 조령천이 이들 산지를 양분하면서 남류하고 영강에 합류하며, 연안에는 상당한 평지가 있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9.7㎢로 마성면 전체 면적의 13%를 차지하며, 임야는 57.2㎢[76%], 기타 8.2㎢[11%]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와 무 · 고추 · 참깨 · 들깨 · 땅콩 · 오미자 등이 많이 생산되며, 과실류로는 사과와 감이 많이 난다.

지하자원이 풍부해 한때는 지역 주민의 80∼90%가 광업에 종사했으나 1991년 도투락 봉명탄광을 끝으로 모든 광산이 문을 닫았다. 이에 대한 대체 산업으로 1992∼1993년도에 마성농공단지를 오천리에 조성하여 현재 16개 업체가 입주하여 있다.

마성면 봉룡리 · 내성리 일대에서는 폐광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정부 출연 기관인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현 한국광해광업공단]과 문경시의 공공자금 및 민간자본 등을 투입해 약 102만 4,793.39㎡[31만 평] 규모의 골프장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2010년 봉룡산업단지 조성을 목적으로 착공되었으나, 시행사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이후 훼손된 임야 지역에 골프장을 재조성하는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2024년 6월 문경시가 골프장 조성을 위한 개발행위 허가를 완료하였다. 이 골프장이 완공되면 문경시의 두 번째 골프장이 되며, 수도권 골프 인구 유입이 기대된다.

문경선 철도가 지나가며, 중부내륙고속도로국도 3호선이 면의 남북을 통과하고 문경새재IC가 있다. 김천-마성 간 지방도가 모곡리에서 북동 · 남서 방향으로 갈라지며, 가은선[가은-불정]이 남부의 면계를 따라 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산으로 신현리에 있는 고모산성이 유명한데, 문경 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규모 면에서도 가장 크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분교 2개], 중학교 1개가 있다.

산북면

문경시의 북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11.78㎢이고, 인구는 2,569명이다. 산북면 행정복지센터가 대상리에 있다.

신라 전기에는 근품현에 속했고 통일신라 때인 750년에는 가유현이라 하였다. 고려 전기인 1020년에 산양현이라 불리면서 상주군에 속했으나 1912년 문경군에 이속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천군 화장면 일부를 편입하면서 산북면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에 거산출장소가 설치되었고, 이후 1995년에 점촌시와 문경군 통합으로 문경시 산북면이 되었다. 1996년 거산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운달산 · 단산 · 공덕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면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이다. 금천의 상류와 그 지류가 남쪽으로 흐르며 상류부에서는 좁은 산간분지를 형성하고, 하류부에서는 좁은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이에 운달계곡과 석봉계곡 등이 유명하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16.63㎢[15%]이고, 임야는 88.23㎢[80%], 기타 5.9㎢[5%]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생산물로는 쌀 · 보리 외에 무 · 배추 · 들깨 · 오미자 등이 있고, 과실류로는 사과와 감이 많이 생산된다. 산채와 송이버섯도 유명하다. 한우 · 염소 등의 가축사육이 이루어지며, 양봉을 많이 하는 편이다. 대하리에서 생산되는 민속주인 호산춘이 특산물로 유명하며, 분재소재목과 도자 장신구 등도 지역의 특산물로 주목받고 있다.

교통은 낙동-단양 간 지방도가 북동 · 남서 방향으로 통과하며 대하-가좌, 영순-산북 간 군도가 면의 북부 · 남동부를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서중리의 근암서원, 김룡리의 김룡사, 전두리 사불산의 사불암(四佛庵)과 대승사(大乘寺)가 있다. 대승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관계문서(聞慶 大乘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關係文書)가 있고, 내화리의 화장사지(花莊寺趾)에도 보물로 지정된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이 있다.

이 지역에는 여러 동족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서중리에는 안동 권씨와 안동 김씨, 전주 이씨 집성촌, 대상리와 대하리에는 장수 황씨 집성촌, 내화리에는 반남 박씨 집성촌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분교 1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산양면(山陽面)

문경시의 남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2.63㎢이고, 인구는 2,909명이다. 산양면 행정복지센터가 불암리에 있다.

신라 중기까지 근품현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중기인 경덕왕 대에 가유현이라 하고 보주(甫州)[예천]에 속했으나 고려 현종(顯宗: 9921031) 대에 상주군에 이속되어 산양현이라 하였다. 명종(明宗: 11311202) 대에 감무가 폐지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주군 일부와 예천군 화장면 일부를 병합해 산양면으로 하고 문경군 관할이 되었다. 1973년 호계면 봉정리가 편입되면서 16개 리동이 되었고, 19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문경시 산양면이 되었다.

왕의산(王衣山: 342.1m) · 오봉산[225.4m] · 비조산[308.4m] 등을 잇는 산릉이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면의 대부분이 100m 내외의 구릉지와 평지가 교차하면서 분포한다. 서쪽에는 영강, 동쪽에는 금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흘러들며, 양하천 유역에는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14.88㎢[45.6%]이고, 임야는 11.99㎢[36.75%], 기타 5.76㎢[17.65%]로 이루어져 있다. 주12이 많았으나 동로면 경천댐 수로가 1990년에 완공된 이후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문경시 읍면 가운데 경지율이 가장 높다.

쌀과 보리를 많이 재배하는데, 친환경으로 생산한 쌀을 새재청결미, 새재바로미 등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그 외에 고추와 양파, 오미자 등을 많이 재배하며, 과실류로는 사과 · 배 등을 주로 재배한다. 문경시에서 한우를 가장 많이 사육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진-영덕 간 국도 34호선과 광양-양양 사이 국도 59호선이 교차하고, 경북선이 면의 남부를, 낙동-단양 사이의 지방도가 동부에서 남북으로 각각 통과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1988년부터 진정리 산업단지, 산양농공단지, 산양제2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지역 제조업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문화유산이 분포하고 있는데, 근암산성은 견훤의 수련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충절사 · 상의재(忠節祠 · 尙義齋)는 단종(端宗: 1441~1457)의 시해를 수습한 엄흥도(嚴興道)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현재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서원과 고택 등 전통 건축 유산이 다수 분포해 있다. 동족 마을로는 현리의 인천 채씨(仁川 蔡氏) 집성촌, 신전리의 개성 고씨(開城 高氏) 집성촌이 대표적이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 중학교 1개가 있다.

영순면(泳順面)

문경시의 남동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8.55㎢이고, 인구는 2,271명이다. 영순면 행정복지센터가 의곡리에 있다.

신라시대에는 남면임하 또는 영순부곡이라 불렸다. 고려 원종(元宗: 12191274) 때 임하촌 출신의 대금취(大金就: ??)라는 장군이 몽고군과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워 부곡에서 현으로 승격되고 상주에 예속되었다. 조선 전기 상주목 영순면이 되었다. 조선 순종(純宗: 1874~1926) 때 문경군에 예속되었고 1892년(고종 32)에 일시 용궁의 서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궁 서면의 일부와 함창 동면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이후 1989년에 면사무소 건물이 준공되었다. 1995년에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어 문경시 영순면이 되었다.

천마산(天馬山: 274.4m)이 있는 남동부를 제외하면 면의 대부분이 100m 내외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면의 남서부를 영강이 곡류하며, 남동단에서 면의 동계를 따라 흐르는 낙동강과 합류한다. 북동부에는 낙동강의 범람원이 발달되어 있다. 달지리의 달늪은 산북 방면과 안동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 만나서 형성한 늪지대로, 과거 낙동강 소금배가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와 문경과 예천 지방에 소금을 공급하였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13.91㎢[36%]이고, 임야는 16.58㎢[43.0%], 기타 8.06㎢[21%]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 호박. 수박. 양파 등이며 최근에는 표고버섯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과실류로는 감이 많이 생산되고, 가축으로는 한우와 염소를 주로 사육한다.

교통은 낙동-단양 간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영순-산북 간 군도가 면내 주요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사근리에는 북헌(北軒) 신섬(申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무림정사(茂林精舍)가 있고, 말응리 물탕거리마을 앞산 중턱 약수탕 물은 마시면 벙어리가 말을 하고 나환자도 낫는다는 말이 전해져 많은 사람이 찾았다고 한다. 율곡리에 부림 홍씨(缶林 洪氏) 집성촌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가 있다.

호계면(虎溪面)

시의 중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3.10㎢이고, 인구는 2,283명이다. 호계면 행정복지센터가 막곡리에 있다.

신라 전기에는 호측현 또는 배산성이라 했으며, 통일신라 중기인 경덕왕 대에 호계현으로 하고 고령군에 예속되었다. 고려 현종 대에 상주군에 속했으며, 조선 전기인 1413년에 문경현에 합속되어 호현방이라 불렸다. 그 뒤에 문경현이 호현내면 산남면 일부를 병합, 문경군이 되면서 호계면이 되었다. 1973년 봉정리를 산양면에 이관하였고, 1986년 점촌시에 주평리를 이관하였다.

면의 대부분이 오정산 · 부운령(富雲嶺: 535m) 등의 높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남서의 일부 지역에서만 영강이 흘러 낙동강에 흘러들고, 연안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경지로 이용된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9.02㎢[17%]이고, 임야는 39.30㎢[74%], 기타 4.78㎢[9%]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 양파, 오미자이고, 과실류로는 배와 감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배는 배즙 등의 가공품으로 만들며, 해외 수출도 많다. 한우와 염소를 많이 사육하고 양봉도 많이 한다.

광산물로는 석회석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막곡리를 중심으로 문경-안동 간 국도가 지나며, 면내에 부곡리와 탄광 지역 간 군도가 있어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1개와 시의 유일한 대학인 문경대학교가 소재하고 있다.

점촌1동(店村1洞) · 점촌2동(店村2洞) · 점촌3동(店村3洞) · 점촌4동(店村4洞) · 점촌5동(店村5洞)

2024년 12월 31일 기준 점촌1동~점촌5동의 총면적은 46.06㎢로 시 전체 면적의 약 5%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3만 8978명으로 시 인구의 절반가량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점촌1동은 법정동인 점촌동 일부와 모전동 일부를 관할하고, 점촌2동은 법정동인 점촌동 일부와 영신동 · 윤직동 및 모전동 일부를 관할한다. 점촌3동은 법정동인 흥덕동과 우지동 · 창동을 관할하며, 점촌4동은 공평동 · 유곡동 · 불정동 · 신기동을 관할하며, 점촌5동은 모전동 일부를 관할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 지역은 문경군 점촌읍과 호계면 별암리 일부로, 1986년 이들 지역을 합쳐 점촌시로 하였다. 1989년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1995년 문경군과 점촌시를 통합하여 도농 통합형 문경시로 개편할 때 옛 점촌시 지역은 점촌1동 · 점촌2동 · 점촌3동 · 점촌4동 · 점촌5동이 되었다.

점촌역, 점촌터미널, 문경시립도서관, 문경문화예술회관, 중앙공원, 문경시민운동장 등과 문경시청, 문경시의회, 대구지방법원 문경시법원 등 주요 공공기관이 자리해 사실상 문경시의 도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 서비스업과 농축산물 유통업이 중심을 이루며, 과수 재배와 축산업 등 1차산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국도 3호선 등이 인접해 시내와 시외로의 접근성이 좋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6개, 중학교 4개, 고등학교 5개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단행본

『문경시 지정유산 현황』(문경시, 2022)
『2022 제27회 문경통계연보』(문경시, 2022)

논문

손명원, 「문경시 지형자원의 분포 특성」(『한국지역지리학회지』 26-3, 한국지역지리학회, 2020)
조정현, 「문경지역 민요전승의 기반과 아리랑의 재발견」(『구비문학연구』 36, 한국구비문학회, 2013)
김기현, 「〈문경새재소리아리랑〉의 아리랑사적 위상」(『한국민요학』 29, 한국민요학회, 2010)
박병수·손명원, 「문경의 자연지리」(『한국지역지리학회지』 4-2, 한국지역지리학회, 1998)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지질 구조가 다른 두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선. 일반적으로 조산대를 가로지르거나 구분하여 주는 큰 규모의 단층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2

두 지층의 층면이 어느 정도의 각도를 이루고 있는 부정합. 오래된 지층이 새 지층과 다른 각도를 이룰 때 생긴다. 우리말샘

주3

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 우리말샘

주4

카르스트 지형의 하나. 석회암 지역에서, 석회암의 갈라진 틈새로 이산화 탄소를 함유한 빗물에 흘러내려 기둥이나 탑 모양을 이루면서 늘어서 있는 상태이다. 우리말샘

주5

연료 이외에 건축·가구 따위에 쓰는 나무. 우리말샘

주6

문경 지역 경제는 석탄 광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받았다. 주요 광산이 폐광된 이후인 1999년에 석탄산업합리화산업단이 은성탄광 자리에 문경석탄박물관을 건립하였다.

주7

정부는 1993년부터 10월 2일 노인의 날을 기념해 10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청려장을 선물하고 있다.

주8

2018년부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는 작품 보존 처리에 문경 한지를 사용하고 있다.

주9

도시 경제의 성장 및 도시화로 인하여 농촌 인구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함. 우리말샘

주10

2006년 고구려를 테마로 하여 조성된 세트장.

주11

원래의 지형면이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골짜기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바뀌는 일. 우리말샘

주12

빗물에 의하여서만 벼를 심어 재배할 수 있는 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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