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 출신. 1926년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중 장재성(張載性)·왕재일(王在一)·최규창(崔圭昌)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독립, 사회과학의 연구, 식민지교육 반대 등을 목적으로 한 항일학생비밀결사인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였다.
그 뒤 회원 중에 이반자(離反者)가 생기자 조직의 비밀누설을 우려, 1927년 3월 형식상 해산하였다. 1928년 광주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약산사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광주학생운동 때 활약하였다.
1930년에 체포되어 그해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석방되었다. 1933년 5월 14일에는 적색농민조합운동을 펼치는 전남운동협의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1934년 2월에 전남운동협의회가 발각되면서 체포되어 1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