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합천 출신. 1940년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박효준(朴孝濬)·이태길(李泰吉)·박찬웅(朴贊雄)·이동우(李東雨) 등과 함께 이태길의 하숙집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고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발족시켰다.
1941년 3월 문예부 기관잡지 『학생』을 발간할 때 편집을 담당하였다. 이에 앞서 1941년 2월에는 권쾌복(權快福) 등 대구사범학교 학생들과 함께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여 연구부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다혁당은 독립을 위하여 문예·미술 운동을 표방하면서 실력을 배양할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로, 이 사범학교의 연습과 학생(대체로 일본인)과 심상과(尋常科) 학생(대부분 한국학생)에 대한 차별대우의 철폐를 협의하는 등 항일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여름 대구사범학교의 교양지 『반딧불』이 문제되어 이 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발각됨으로써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2년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른 뒤 출옥하였다. 그러나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다음 달에 순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