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인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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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진안현감, 황주목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경정(景靖)
  • 백춘(伯春)
  • 태천(苔泉)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사망 연도1626년(인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진안현감|황주목사|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552년(명종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덕 (전 중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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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진안현감, 황주목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백춘(伯春), 호는 태천(苔泉). 민세규(閔世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종윤(閔宗胤)이고, 아버지는 민사권(閔思權)이며, 어머니는 노인(盧禋)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84년 별시 문과에 장원하여 성균관전적을 지냈다.

사헌부감찰 때 서인 정철(鄭澈)의 일파라고 하여 안협현감으로 좌천되었다. 이때 기근이 들었으나 백성들을 잘 무휼하고 진안현감으로 전임되었는데, 재임 중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이 현계(縣界)로 들어오자 군사를 동원하여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鄭玉男)을 잡아들였다.

이 공으로 예조참의에 승진되고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장례원판결사·충주목사 등을 지내고, 1592년 임진왜란 때 황주목사로서 임진강을 지키다가 대가(大駕)를 따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렀다.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천장문안관(天將問安官)·청주목사 등을 거쳐, 1598년 여양군(驪陽君)에 봉하여졌다. 1604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서 또 명나라에 다녀와서 안변부사·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고, 1621년(광해군 13)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경정(景靖)이다.

저서로는『태천집』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인물고(人物考)』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우암집(尤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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