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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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념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정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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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정치제도.
내용

현대 정치사회에서 민주주의만큼 그 의미가 다양한 말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이 말은 각자의 관점이나 이해에 따라서 자의적으로 개념규정하여 사용되고 있는데, 가령 가장 심한 독재체제의 국가에서조차도 그 정치를 민주주의라는 말로 강변할 정도이다.

민주주의는 사실상 고전적인 아테네의 정치제도가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등장에 의하여 새롭게 변형, 수용된 제도이다. 고대 아테네민주주의는 전체구성원 중에서 정치참여권을 가진 시민만이 직접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생업에 필요한 노동은 노예가 맡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여가시간이 있었다.

수적으로도 한정된 시민에 의한 직접정치참여는 결국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구분이 없는 대등한 정치권력의 향유로 전개되었다.

아테네민주주의가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의미있게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시민사회의 대두에서부터였다. 당시 새로운 사회계급으로 대두하였던 부르주아는 그들과 대립관계에 있었던 귀족의 전제군주적인 절대체제와 맞서서 민주주의를 내세우게 되었다.

부르주아들이 내세웠던 민주주의는 일종의 의회주의적인 것으로, 이것은 시민적인 자유를 바탕으로 하여 정치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근대시민사회에서 논의되었던 시민민주주의는 결국 시민으로서 일정한 재산을 보유한, 그러므로 정치권을 장악하여 지속적인 지배세력으로 유지될 수 있는 계급적인 성격이 전제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당시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논리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근대시민사회의 대두와 산업화는 경제적으로 급속한 사회발전을 이루었으며, 그 결과 도시의 산업노동자의 수적인 증대를 가져왔다. 당시 자본주의는 가치배분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노동자들의 욕구의 분출이 나타났고 그것은 기존의 자유민주주의적인 부르주아체제에 대한 정면공격까지 감행되었다.

노동자계급에 의한 이러한 공격은 우선 급격한 계급혁명의 형태로 분출되었는데, 그것은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코뮌체제로의 지향이었다.

그리고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도전은 사회구조에서 구 중산계급에 속하는 일부 인사와 극우파적인 사회세력에 의하여 노동자의 도전을 차단하려는 우파적인 파쇼체제로의 도전이었다.

이 두 가지 도전에 맞서서 당시 부르주아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중우정치적인 성격의 대중민주주의를 다원적 엘리트민주주의로 변형시키면서 사회복지정책 등을 통하여 노동자의 생활을 향상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의 도전을 극복하려 하였고, 극우파쇼적인 도전에 대해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인종주의적인 편견의 공박과 전체주의의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에 의한 전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어느 경우에서나 민주주의가 비록 제도적인 면에서는 변용을 보여주고 있다 해도, 이념적인 사상체계만은 동질성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은 첫째가 자유의 실현이며, 둘째가 평등의 보장, 그리고 셋째가 인도적 가치의 추구이다. 자유·평등·박애의 세 가지 가치체계는 인간의 개인적인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의 발전을 동시적으로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완벽한 정치체제도 아니고 불변의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오히려 보다 중요한 사실은 각각의 사회에 그것이 어느 정도로 적실성을 가지는가의 문제이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만 해도 민주주의가 유입되어 온 것은 대체로 개화사상이 논의되었던 조선왕조 말기부터였다. 그때부터 민주주의는 민족항일기를 거치는 동안 장기간의 내면적인 침잠과정을 거쳐서 광복 이후 미군의 진주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수용되는 성격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제도만의 수용은 적지 않은 문제들을 대두시켰다. 민주시민적인 의식이나 전통이 결여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제도적인 도입은 자연히 정치적인 혼란을 가중시켰고, 권력을 점유한 소수자의 지배권 독점에 따르는 과두체제로의 전락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사정은 대체로 그 이후 우리 나라 현대정치사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이를 단계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설정이 가능해진다.

제1단계는 대체로 광복 이후부터 우리 나라 정부수립을 거쳐 6·25전쟁, 그리고 자유당의 지배체제가 확립되었던 1950년대로, 이 기간 동안 민주주의는 계몽적인 과두체제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즉, 권력을 점유한 이승만(李承晩)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지배세력은 일반 국민의 정치적인 무지를 내세워 민주주의적 지향을 명분으로 하는 자유의 제약을 보여주었던 시기였다.

제2단계는 1960년대에서 1972년의 이른바 유신체제 성립 이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의 민주주의는 논리적으로는 민족적 민주주의라든가 행정적 민주주의 또는 한국적 민주주의 등을 내세워졌지만, 사실은 군부·관료·기업가에 의한 지도체제 구축에 의한 강력한 권위주의적 성격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지향하여야 하는 자유나 평등·참여 등은 극도로 제약되는 속성까지도 나타났다.

제3단계는 대체로 1972년부터 그 뒤 1979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사망에 이르는 기간까지로, 이 시기에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제도적인 면에서나 그 기능적 과정에서 극도로 약화되었던 일종의 국가주의적인 성격으로 탈바꿈되기도 하였다.

대통령의 선출은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요식행위로 결정되었고 시민적인 자유조차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여 제약되기도 하였다.

그 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다시 한번 지배세력 사이에 내적 결속과 재편을 통하여 정치권력구조의 재조정이 전개되었으며, 마침내 민주주의제도는 위축되고 말았다.

물론, 지난날 40여 년이 넘는 광복후사에서 민주주의는 비록 권력구조면에서는 권력구조 변동의 비제도화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었지만, 국민의 의식에서나 가치체계에서는 놀랄 정도로 변모된 일면을 보여주었다.

국민의 정치의식의 민주주의적 지향이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결집되는 데는 다소의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이제 민주주의가 국민들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방법으로서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나 그것의 정착을 이룩하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이루어져 가고 있음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기여적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실질적이고도 제도적인 변용을 고려할 때 여기에는 다음 몇 가지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첫째로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적인 가치를 전통적인 한국사회에서 연원되는 것과 일치시켜야 하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이념적인 한국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시민적인 자질과 정치문화의 함양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으로서 책임질 수 있는 사회적 민주시민 계층과, 나아가서 그 조건의 충족을 도모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지도자의 존재를 지적할 수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단 한번도 정상적으로 시행되지 못하였으며 파행과 변형의 굴절만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제도가 만능이 아니며, 더군다나 절대적인 가치의 정치제도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서는 시민 각자의 민주주의적인 삶의 생활태도가 확립되어야만 비로소 그 극복의 가능성이 기대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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