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장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승정원도승지,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효(文孝)
  • 치구(稚久)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사망 연도1700년(숙종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참판|승정원도승지|병조판서
  • 출생 연도1649년(인조 2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영국 (인하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민진장 묘역 미디어 정보

민진장 묘역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승정원도승지,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치구(稚久). 민기(閔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며, 어머니는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을 아내로 맞아 호조정랑 남재수(南在洙) 등 5남을 두었다.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 20세에 진사가 된 뒤, 곧 벼슬길에 나가 현령(縣令)을 지내던 1686년(숙종 12)에야 비로소 별시 문과에 장원하였다.

할아버지 민광훈(閔光勳)과 아버지에 이어 3대가 계속 장원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었다. 장원하자 규례에 따라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되어 승정원승지에 임명되었고, 이어 예조참판·승정원도승지를 거쳐 1696년(숙종 22)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1700년 의정부우의정에 오르면서 죽기까지 형조판서·의정부우참찬·사헌부대사헌·호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군국(軍國)의 중무(重務)를 맡았다. 성품이 화후(和厚)하여 사림(士林)과의 마찰이 없었고, 효행이 뛰어나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도곡집(陶谷集)』

  •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