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일찍이 원나라에 들어가 고려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특히,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던 1254년(고종 41) 고려는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보내어 원나라와 강화를 맺도록 하였는데, 민칭은 안경공이 고려왕의 친아들이 아님을 원나라에 알려 고려가 원나라와 강화를 맺는 데 불리하게 하였다.
1257년 몽고에서 돌아와 당시의 집권자인 최의(崔竩)에게 원나라는 다시 고려를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여 최의로부터 많은 물품을 받고 산원(散員)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1259년 흑산도로 유배되었다가 몽고 사자 야속달(也速達)의 강권으로 귀양에서 풀려나 원나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