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석촌(石村). 황해도 벽성(碧城) 출신. 진사 민영태(閔泳泰)의 장남이다.
1907년 정미7조약에 이어 군대해산이 강행되자 민효식은 1907년 8월 황해도 연백과 평산 지역의 유학자 신재봉(申在鳳)을 비롯하여 신석(申襫)·신필수(申弼秀)·채홍두(蔡洪斗)·우병렬(禹炳烈)·변석현(邊錫鉉)·조도환(曺道煥) 등과 평산군 마산면의 도평산(挑坪山)에서 의병을 봉기, 전 목천군수 박기섭(朴箕燮)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신재봉 등이 체포되어 순국하자, 1908년 2월부터는 허덕천(許德天) 과 함께 독립부대(많을 때는 600여 명)를 이끌고 일본군과의 유격전을 감행하면서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주요 활동지는 재령·신천·장연·평산·은율·옹진·송화·해주 등 황해도 지역이었다.
1994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