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박내현은 해방 이후 「부엉이」·「노점」·「작품 19」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우향(羽鄕)이다. 1937년 경성관립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 사범과 일본화부를 졸업했다. 1941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1943년에는 총독상을 수상했다.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구사하면서 서구적인 공간 설정을 화면 속에 끌어들여, 감각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강렬한 화풍으로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제8회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정의
해방 이후 「부엉이」·「노점」·「작품 19」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와 제8회 대한미술협회전에서 각각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국전 초대 작가와 심사 위원을 역임하였으며, 백양회(白陽會)의 창립 회원으로 활약하였다. 19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Sao Paulo Biennale)의 한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출국하여 남미(南美) 각국과 멕시코 등지를 시찰하였고, 이러한 여행을 계기로 서구 미술의 방법론과 판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뉴욕의 밥 블랙번(Bob Blackbunn) 연구소와 프렛(Pratt) 그래픽 센터에서 판화와 타피스트리(tapestry)를 공부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최한 귀국 판화전은 우리나라 화단과 판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5년 다시 판화 수업을 하기 위하여 미국에 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그해 11월 귀국하였다. 그러나 회복하지 못하고, 1976년 1월 2일 성북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1946년 김기창(金基昶)과 혼인한 이후 그와 더불어 국내외에서 1947년 이래로 모두 10여 차례의 부부전과 개인전을 가졌다.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구사하면서 서구적인 공간 설정을 화면 속에 끌어들여, 감각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강렬한 화풍을 이룩하는 등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의 이러한 회화 세계는 대체로 4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기(1940년대)는 일본 화법에 근거를 둔 인물화 작품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이다. 제2기(1950년대)는 김기창과 더불어 동양화의 재료를 가지고 서양 현대 조형이 쌓아 올린 분석적인 방법을 원용하여 대상에 대한 입체적인 형태 해석과 면 분할이라는 반추상적(半抽象的)인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제3기(19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화풍을 이루었다. 제4기(1970년대)는 판화라는 새로운 기법을 통하여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보여 주었다. 대표작으로 「단장」(1943) · 「노점(露店)」(1956) · 「이른아침」(1956) · 「작품 19」(1965년) · 「작품 F」(1973년)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우향 박래현 판화전』(최병식, 시몽화랑, 1995)
- 『우향 박래현』(경미문화사, 1978)
- 『한국현대작가십인』(오광수, 열화당, 1977)
- 「박래현, 그의 작품세계」(김성희, 『한국현대미술가100인』,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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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실제로나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성질. 또는 그런 경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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