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부터 1981년까지 총 30회 동안 이어온 한국의 관전이다. 약칭으로 ‘국전’이라고도 한다. 해방 이후 낙후된 미술 문화를 국가 주도로 일으키고자 창설되었다. 하지만 심사위원 선정 과정과 수상작 선정이 파벌에 의해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규정 개정과 공모 부분의 변화에도 관전식 아카데미즘을 고수하여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1981년 제30회로 국전이 막을 내리고 민간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었다. 198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전은 1947년 미군정청 문교부가 조선종합미술전을 개최한 것이 처음이었으며 1948년 정부수립 기념전을 계기로 정부가 주도하게 되었다. 정부는 문교부 고시 제1호에 의해 기존에 조선총독부가 주관했던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약칭 선전)의 규약을 모태로 국전 제도를 규정했다. 국전은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서예 등으로 공모하였으며 심사위원들이 입선작을 선정하고 그 가운데 특선작을 뽑고, 그 안에서 다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문교부장관상을 선정하여 수여하였다.
1949년 11월 21일에서 12월 11일까지 경복궁 국립미술관에서 제1회 전람회를 열었던 국전은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1952년까지 3년 동안 공백을 두었다. 1953년 정부가 환도한 후 제2회가 개최되었다. 1955년 제4회에 건축부를 신설하였으며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초대 작가제를 도입하였으며 심사위원은 초대작가 가운데 선정하였다.
그러나 1956년 화단이 주도권을 두고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로 갈리게 되면서 한국미술가협회를 결성한 회원들이 예술원에 예속되어 있는 심사위원 선정과 작품 선정의 공정성을 문제삼아 국전 불참을 선언하자 국전이 연기되는 등 파행이 일어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57년 문교부 고시 제33호로 국전 규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예술원 미술분과위원회에서 국전에 사진부를 신설하도록 가결했으나 사진이 순수예술이냐 아니냐를 두고 다시 논란이 야기되었고 임시총회에서 부결되기도 하는 등 국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측과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려는 측 사이에서 논란이 거듭되었다.
국전의 어용성과 폐지 논란이 계속되면서 1960년 5월 조선일보에는 「국전은 폐지되어야 하는가」 라는 기획기사까지 실리게 되었고 4·19 혁명의 민권신장과 더불어 미술계에서도 관권에 대한 반발이 거세어졌다. 1960년에는 국전에 전시된 작품을 작가가 철거하는 이른바 “국전 소요사건”이 있었고, 20대 청년작가들이 결성한 60년 미술협회는 국전출품을 거부하고 10월에 덕수궁 담벽에서 가두전을 열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학도들이 모인 벽동인도 파벌싸움에 지친 기성화단을 비판하면서 덕수궁 담에 작품을 전시하는 등 국전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었다. 이미 국전이 새로운 미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에 대해 1957년에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현대미술작가초대전 등이 탄생되고 화단에 새로운 미술단체들이 결성되어 새로운 경향을 대변하는 등 국전은 권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국전의 변혁은 5·16 군사 정변 이후 대폭 이루어졌다. 1961년 제10회전에서는 30대 전위미술가들의 요구에 따라 재야 중견작가들을 심사위원 또는 추천작가로 받아들였으며, 서양화부에 구상, 반추상, 추상의 3과제를 도입하였고 국전에서도 추상 작품이 특선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전의 아카데미즘을 고수하던 일부 기성작가들과 추상미술을 하던 중견작가들의 갈등은 여전하였으며 제11회, 제12회에서는 새로이 진출했던 작가들이 후퇴하게 되었다.
1968년에는 문화예술행정이 문화공보부로 이관되었으며, 1969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서양화를 구상과 비구상으로 분리하고 이어 1970년에는 동양화와 조각도 구상과 비구상으로 분리하였으며, 사진과 건축을 국전 부문에서 제외하였다. 1974년 제23회에는 동양화와 서양화, 조각의 구상 부문과 서예, 사군자를 가을에, 동양화와 서양화, 조각의 비구상 부문과 공예, 건축, 사진을 봄에 전시하는 방식으로 봄 국전과 가을 국전으로 나뉘는 등 국전의 구상과 비구상 부문의 대립이 날로 심해져갔다.
1970년대부터는 화단에서 추상작품을 하는 작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신문사와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민전(民展)이 생겨났으며, 국제전에 출품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짐에 따라 국제전 참여경력이 중시되면서 국전을 중심으로 한 화단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마침내 1980년 제29회는 주관을 민간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옮겨 관전이 아닌 민전으로 개최하게 되었으며 1981년에 국전은 제30회로 막을 내리고 사단법인 미술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해방 이후 낙후된 미술문화를 국가 주도로 일으키고자 하는 관전이었다. 공모전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으며, 정기적인 전람회를 통해 미술문화 진작에 기여하였다.
1981년 제30회로 국전이 막을 내린 뒤, 민간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大韓民國美術大展)으로 바뀌어 관전이 아닌 민전으로서 개최되었으며, 198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