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즘 (academ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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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개념
아카데미의 관학계 혹은 관전계의 작풍이나 양식을 가리키는 학술용어. 관전 화풍.
이칭
이칭
관전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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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아카데미의 관학계 혹은 관전계의 작풍이나 양식을 가리키는 학술용어. 관전 화풍.
개설

아카데미즘은 정부에 의해 설립되거나 전통에 의해 지지되는 관학계(官學系) 혹은 관전계(官展系) 작풍이나 양식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이하 조선미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 이하 국전)의 주류 화풍인 관전 양식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의 관전으로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했던 조선미전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설립된 국전의 화풍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특정 화풍을 아카데미즘 양식으로 단언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대체로 균형미와 조화미를 중시하고 대상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고전주의적 경향을 넓은 의미에서 아카데미즘 양식으로 통칭한다. 또한 고건축물 · 고가구 · 도자기 · 공예품 등 한국의 전통미술품을 소재로 선택하거나 향토적 서정성을 토속적 미감으로 표현하는 경향도 아카데미즘의 주류 화풍에 속한다.

내용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서 서양미술을 수용했던 한국미술의 역사적 배경 때문에 아카데미즘 화풍도 서구와 일본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한 조선미전이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전국적 규모로 실시되면서 미술을 서양화 · 동양화 · 조각 · 공예로 분류하고, 풍경화 · 인물화 · 정물화 · 누드화로 장르를 구분하는 등 한국 미술의 근대적 체제 확립의 근간이 되었다.

공모전 형식의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 대부분이 일본의 관립미술학교의 교수들이거나 관전계를 이끄는 중견 미술인들이었기 때문에 조선미전 입상작들 역시 주제나 제재, 구도와 기법 등에서 일본의 관학계와 관전계 화풍을 따르면서 일본 아카데미즘에 종속되었다. 특히 192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인 미술가들의 대다수가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출신들이어서 일본의 아카데미즘이라고 할 수 있는 외광파(外光派) 화풍이 주류가 되었다.

조선의 향토적 소재를 서정적이고 토속적으로 표현하는 경향도 관전풍으로 정착하였다. 대상의 사실적 재현에 충실하면서도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감성의 표출에 주력한 조선미전의 화풍은 광복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이어졌다.

의의와 평가

한국 미술의 근대적 체제 확립에 관전계 작풍이 근간을 이루게 되었으며, 대상의 시각적 재현에 충실하면서도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감성에 입각한 한국적 아카데미즘으로 정착했다.

참고문헌

『한국 근대미술사 : 갑오개혁에서 해방 시기까지』(홍선표, 시공사, 2009)
『한국현대미술사 : 1900년이후의 한국미술의 전개 』(오광수, 열화당,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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