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침략에 대한 동양의 연대적 방어를 주장하는 사상을 정치적 동양주의라 한다면 문화적 동양주의는 서구문화에 대한 동양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한다. 동양의 연대에 근거하면서도 중국에서는 중화주의로의 회귀를, 일본에서는 일본주의를, 한국에서는 한국 전통문화의 복권을 주장하여 문화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한국의 동양주의 미술론은 1929년에 심영섭(沈英燮)이 「아세아주의미술론(亞細亞主義美術論)」을 발표한 이후 1930년대 전반에서 중반까지를 1기,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까지를 2기로 구분될 정도로 그 성격이 크게 변화하였다. 동양의 전통과 고전을 숭상하여 사대부 문화인 서(書)와 남종문인화의 전통을 고수한 것은 동양주의 미술의 근본 이론이다. 그러나 1기 동양주의 미술이 서구의 후기인상주의 이후의 미술과 동양의 주관적․주정적 성격의 동질성에 주목하여 현대성을 쟁취하고자 하였던 반면에 2기 동양주의 미술은 동양화의 유려한 선(線)과 수묵(水墨)의 현묘한 세계에서 동양의 고전미과 전통미를 재발견하였다.
서양미술에 대한 동양 미술의 우월함, 사실적․객관적 재현 미술에 대한 상징주의적․주관적 재현 미술의 우위를 주장하는 심영섭의 반(反)문명적 아시아주의 미술론이 발표된 직후 이태준(李泰俊), 김용준(金瑢俊), 구본웅(具本雄) 등이 심영섭에 공명하는 글과 작품을 발표하면서 1930년대 초반 화단에 새로운 동향이 전개되었다. ‘동양주의 미술’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흐름은 1930년대 전반기에는 서양과 일본 신문화에 의해 훼손되어버린 동양 고유의 문화, 특히 문인화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과 현대성의 획득을 동일한 노선으로 파악하였다. 193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전위적 혁신성과 자유로운 분의기를 경계하는 일제 말의 상황에서 상고주의(尙古主義)가 강화되어 양식적으로도 호방한 터치와 필선,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이 지배했던 초기의 노선이 유려한 필선과 고졸한 형태미, 관조적이고 고담한 미감으로 선회하였다.
일본의 대동아주의(大東亞主義)와의 친연성을 부인하기 어려우나 문화적 민족주의의 유형으로서 주체성을 회복하고 동양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여 현대에 계승시켰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