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결성되었던 조선미술가협회가 미술인들의 반공의식 함양과 결속을 위해 확대 재편된 단체이다. 재조직된 시기에 대해서 1948년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 이후, 1950년 2월 본격적인 조직 정비와 활동 시작 이후,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 등 세 가지 설이 존재한다. 출범 당시 회장에 고희동, 부회장에 이종우와 장발이 선출되었고,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단체로 가입하였다.
1950년 4월 제1회 ‘대한미술협회전’을 개최한 후 매해 1∼2회의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1951년 개최한 ‘3·1절 기념미술전’과 ‘전시미술전람회’는 전쟁 발발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전람회였다. 1953년까지 부산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후 1954년부터는 서울 경복궁 국립미술관에서 ‘대한미협전’을 개최하였다.
전쟁 발발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있던 서울대학교 학장 장발이 1954년 귀국함에 따라 위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고희동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아울러 전해인 1953년 신설되었던 서예분야의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함께 일어나자 결국 이 해 6월에 열린 ‘대한미협전’에 서울대학교측 작가들과 서예가들이 불참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55년 서울대학교 측 작가들이 모여 한국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심사위원 선정을 둘러싸고 한국미술가협회 측과 갈등 끝에 국전을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한국미술가협회 측과 합동전을 종용하는 정부의 요구에 맞서면서 ‘대한미협전’을 개최하지 못하였고, 활동이 실질적으로 중단되었다. 1961년 6월 군사정부의 문화예술단체 통합정비와 재편성 정책에 의해 공식 해체되었고, 그 해 12월 한국미술협회로 통합되었다.
대한미술협회는 한국전쟁 중 전시 하의 국가정책에 호응할 것을 선언하고 미술인부역자 심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미술인들의 단결과 반공이념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꾸준히 대한미협전을 개최함으로써 작가들에게 작품발표의 기회를 제공하였음은 1950년대 화단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