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종우는 일제강점기 「모부인상」, 「인형이 있는 정물」, 「독서하는 우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18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추억」이 양화부 3등상에 입상하면서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약 3년간 체류하면서 그린 작품 「모부인상」과 「인형이 있는 정물」이 1927년의 살롱 도톤에 출품, 입선되었다. 1934년에는 한국인 서양화가들만의 모임인 목일회를 구성하고 작품을 발표하였다. 1974년 동아일보사는 이종우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화집도 출판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모부인상」, 「인형이 있는 정물」, 「독서하는 우인」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개설
활동사항
1925년 우연한 계기로 프랑스에 가서 약 3년간 파리에 체류, 한국인 화가로서는 최초로 도불 화가가 되었다. 파리에서는 ‘개랑연구소’와 백계 러시아인인 슈하이에프의 연구실에서 주로 고전주의적 사실묘사를 수업하였다. 이 때 제작한 작품 「모부인상(某婦人像)」과 「인형이 있는 정물」이 1927년의 살롱 도톤에 출품, 입선되었다. 1928년 3년간의 수업을 끝내고 귀국하여 그해 동아일보사 주최로 파리 시절의 작품 53점으로 귀국 개인전을 열었다.
귀국 후 한동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 경신학교(儆新學校), 평양의 삭성회(朔星會) 회화연구소 그리고 다시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후진 지도에 힘썼다. 1933년 서화협회 간사가 되었으며, 1934년에는 한국인 서양화가들만의 모임인 목일회를 구성, 이를 발판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광복 후 조선미술건설본부가 발족되어 서양화부 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건설본부를 중심으로 다시 조선미술협회가 생기면서 부회장에 올랐다.
이 후 대한미술협회(조선미술협회가 정부수립 후 개칭)의 부회장, 문총(文總) 부회장 등 미술계의 지도적 인사로서, 그리고 국전 창설 이래 장기간에 걸친 심사 위원으로 있었으며,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 미술학부장 · 홍익대학장 등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광복 후 그의 활동 무대는 주로 국전과 1958년에 창립된 목우회(木友會), 1969년에 창립된 사실화가회(寫實畫家會) 등이었다. 기타 주요한 초대전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근대미술 60년전’ · ‘현역화가 100인전’ 등이 있다.
작품세계
1925년에서 1928년까지의 파리 체류 기간 중 제작된 작품의 경향은 고전적 사실 화풍으로 해부학적인 대상 파악이 두드러지고 있다. 「돌아선 나부」 · 「모부인상」 · 「남자나체」 · 「독서하는 우인」 등 일련의 인물 소재의 작품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1945년 이후에는 다시 정감적인 소재 해석과 자연 관조의 동양적인 취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면서 파리 체류시의 작품과 극단의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만년에 이르러 야외 사생의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상훈과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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