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대의 서화 감상은 서화 취미를 가진 몇몇 문인들이 모여 서로 글씨나 그림을 평하는 것이었던 반면, 1900년대 이후 미술 감상은 일정한 공간에 작품을 진열하여 돌아다니면서 감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통 서화감상과 전람회의 중간 형태로 1900∼1910년대에 존재했던 휘호회(揮毫會)가 있는데, 이는 작가가 특정한 짧은 기간 동안 공공기관을 비롯한 일정한 공간에서 작품을 직접 제작해 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전람회는 서구에서 르네상스 이래 왕실이나 귀족계층에서 진귀한 재화나 미술품을 수집하여 진열한 데서 나아가 박물관을 만들었으며, 19세기 중엽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상품과 미술품을 한 공간에 모아 진열했던 박람회와도 연관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에 열린 경성박람회 시기에 경운궁의 대한문 옆에 파노라마관을 꾸며놓고 일본 군대가 만주 여순 지역에서 벌인 전쟁 상황을 찍은 사진과 유화 전시회를 열었다. 이어 1915년 경복궁에서 개최된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에서 불상, 도자기 등이 새로 건립된 서양식 건물인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서양화와 동양화ㆍ조각ㆍ사진 등이 전통 목조 건축 안에서 전시되었다. 이는 관람객이 미술을 전시장에서 만나도록 함으로써 전시 문화를 경험하도록 한 것이었다.
전람회는 전시공간을 꾸며 대개 한정된 기간에 이루어진다. 전람회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눌 수 있고, 어떠한 기관이나 협회에서 주최하여 공모하는 공모전이 있다. 외국에 널리 공모하여 열리는 국제 전람회는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biennale)와 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triennale)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가장 이른 시기 개인전으로는 1916년 평양 연무장(鍊武場)에서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김관호의 개인전을 들 수 있으며, 1921년에는 일본 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한 나혜석의 개인전이 경성일보사 강당인 내청각에서 열렸다. 단체전으로는 1909년 10월 19일 서울 교동에 있는 기호학회 건물에서 제1회 한양서화전람회가 열렸다. 그러나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여 열었던 본격적인 전람회는 1921년 시작된 서화협회전람회로, 1936년까지 15회 동안 지속되었다. 서화협전은 휘문고보 강당, 중앙고보 강당 등 학교 강당을 빌려 3일에서 1주일 가량 진행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는 해마다 약 한 달 동안 열렸는데, 처음에는 상품진열관을 빌려 열리다가 나중에는 조선총독부 도서관, 조선박람회장 등으로 옮겨 다녔으며 1939년부터는 조선총독부미술관에서 이루어졌다. 전람회에는 학생과 일반인들이 다수 관람하였으며, 대개 입장권을 구입하여 관람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는 백화점에 화랑이 개설되어 전람회가 열렸으며, 카페 등에서도 소규모의 전람회가 열리는 등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다양하게 개최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졌다. 1949년에 문교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80년 제30회전까지 진행되었다. 민간단체에서 벌이는 전람회나 개인전은 미술시장의 형성에 따라 매우 다양해졌다. 1995년 광주에서 비엔날레가 열림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국제적인 전람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전람회는 전통시대에는 교양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미술감상의 기회를 일반인애개도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미술시장이 상업화됨에 따라 전람회의 성격도 상업적인 것으로 바뀌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