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개설되었으나 상설 전시장이 없었던 조선미술전람회의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1939년 5월 경복궁 후정에 건립되었다. 주로 조선미술전람회 전시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백만양화회와 총후미술전람회 등의 전시공간으로도 쓰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경복궁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39년 5월에 준공되었으며, 1939년 6월 4일부터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함으로써 전시장으로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애초에 경복궁에 있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이 협소하여 경복궁의 후원에 박물관ㆍ과학관ㆍ미술관 등을 아우르는 복합박물관을 계획하였으나,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일본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자 1939년에 미술관 건물만 준공되었다. 복합박물관 건축설계에 응모한 당초의 당선안은 ‘조선색’을 가미한 2층의 박물관과 과학관 건물이었으나, 단층의 미술관 건물로 축소 건립되었다.
1939년 준공된 뒤 1944년 제23회까지 조선미술전람회장으로 활용되었으며, 그밖에도 1940년 『성전미술전람회(聖戰美術展覽會)』등 전시체제의 ‘시국색(時局色)’이 묻어나는 전시나, 1940년부터 1942년까지 3회에 걸쳐 열린 『재도쿄미술협회전』의 전시장으로도 쓰였다.
해방 이후 경복궁 미술관으로 개칭되었으며, 1949년에 개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장으로 사용하다가 1975년부터 1993년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한국민속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전승공예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공공 전시공간이 부족하던 경성에 독립적인 전시공간으로 건립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 등 관설 전람회를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민간에도 대여되어 각종 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4개의 방형에 가까운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다목적으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1998년 경복궁의 건청궁 일괄 복원사업에 따라 철거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부족한 공공 문화기관으로 건립되었다. 애초에 복합 문화공간을 의도하여 설계공모까지 이루어졌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여 축소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이미 조선미술전람회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었고, 전시체제로 인해 문화 방면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 건물이 세워진 자리가 명성왕후가 시해되었던 건청궁 영역이었기 때문에, 일제가 역사적인 의미를 훼손하는 자리에 지었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