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동경에 유학하고 있던 다섯 명의 화가들이 1930년 12월 결성한 미술 단체.
연원 및 변천
1930년 12월 21일자 『조선일보』에는 이들이 결성한 백만양화회의 임시 사무소가 동경시외의 노가타쵸(野方町 下蘆宮 百十四)에 있으며, 제1회 전람회는 1931년 4월중에 경성에서 개최될 예정이라는 기사가 실렸지만, 전람회가 개최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단체를 주도한 인물인 김용준은 유학중인 1927년부터 28년까지 「화단개조」, 「프롤레타리아미술비판」과 같은 비평을 국내에 발표하였고 대구의 ‘영과회전(0科會展)’에 참가하기도 했다. 1930년에 김용준은 도쿄미술학교 동문들과 함께 동미회(東美會)를 조직하여 대표를 맡아 전시회를 개최하는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그해 말에는 백만양화회를 조직했다.
1936년에 김환기와 길진섭이 일본인 츠루미 타케나가(鶴見武長), 칸노 유이(菅能由爲), 후타코시 미에코(船越三枝子)와 동경에서 결성한 단체인 ‘백만회(白蠻會)’와는 구분된다.
활동
카프(KAPF)계열의 작가인 정하보(鄭河普)가 이 글에 대한 비판을 『조선일보』에 실었는데, 그는 이들의 미술을 ‘쁘띠 부르주아’의 미술로 치부하고 조선 프롤레타리아가 성장하면 몰락하게 되리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1800-1945』(최열, 열화당, 1998)
- 「백만양화회의 조직과 선언을 보고」(정하보, 『조선일보』, 1930. 12. 26.)
- 「백만양화회를 만들고」(김용준, 『동아일보』, 193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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