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

회화
개념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미술교육을 도입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던 교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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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도화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미술교육을 도입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던 교과명이다. 조선 시대에 그림을 그리는 기관인 ‘도화서’에서 차용한 말이다. 1899년에 설립된 상공학교에서 처음으로 ‘도화’가 교과로 채택되었다. 1907년에 발간된 『도화임본』이 첫 도화 교과서이다. 도화 교과에서는 임모화·자유화·기억화·사생화 등을 화가들이 가르쳤다. 초기에는 임모가 많았으나 점차 사생의 학습 비중이 높아졌다. 일제강점기 실시된 도화는 ‘미술’로 교과명이 바뀔 때까지 사용되었다. 도화 교과를 통해 근대적 미술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키워드
정의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미술교육을 도입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던 교과명.
연원 및 변천

1895년 소학교령 반포 이후 새로운 학제에 의해 1899년에 설립된 상공학교(商工學校)에서 ‘도화(圖畵)’가 교과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본래 ‘도화’는 조선시대에는 왕실 및 관청의 행사를 기록하거나 소용되는 그림을 그리는 기관인 ‘도화서(圖畵署)’에 사용되는 용어였다. ‘도(圖)’는 본이 되는 도안 등을 뜻하며, ‘화(畵)’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서구식 미술 개념과 미술 교육 방식을 도입하고 이를 ‘도화’라는 교과목으로 가르쳤다. 초기의 ‘도화‘는 도안술이나 제도술 같은 실용적인 내용으로 공학에 필요한 학문이었으나 소학교 교과로 채택하면서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법을 익히는 교과로 인식되었다. 도화교과서로는 1907년에 『도화임본(圖畵臨本)』이 처음 발간되었는데, 그린 이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도영(李道榮)이 원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합방 이후 1911년에 조선총독부조선교육령을 발포함에 따라 도화는 초등과 및 중고등과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이 되었다. 이 교과명은 1945년 미군정청 학무국에 의해 미국식 교육제도가 채택되면서 교과명이 ‘미술’로 바뀔 때까지 사용되었다.

내용

‘도화’는 상공학교에서는 도안술이나 제도술 같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뜻했지만 1911년 조선교육령에 따라 실시된 도화 교과는 오늘날 이야기하는 ‘미술’에 가까운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도화 교과에서는 임모화(臨摸畵) · 자유화(自由畵) · 기억화(記憶畵) · 사생화(寫生畫) 등을 가르쳤는데, 교과서에 제시된 모양을 따라 그리는 것이 임모, 직접 관찰한 바를 그리는 것이 사생, 그려진 그림을 보고 나중에 기억하여 그리는 것이 기억화이며, 주제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그리는 것을 자유화라고 하였다. 임모나 사생에 그려지는 소재는 전통적인 제재였던 사군자나 산수가 아니라 생활주변의 사물이나 인물, 동물 등이었다. 초기에는 임모의 비중이 더 많았으나 점차 사생에 의한 학습의 비중이 높아졌다.

1910년대에는 전통적인 방식에서와 같이 모필(毛筆)로 임모를 중심으로 하는 도화교육이 이루어졌다면, 1920년대에는 연필화(鉛筆畵)는 물론 물감을 사용한 수채화도 가르쳤으며, 야외사생과 데생도 병행하였다. 1920년대 일본의 도화교과서를 인가하여 사용한 중-고등학교 도화교과서에서는 유화도 가르치도록 하게 되었다.

도화는 당시 화가로 활동하던 미술가들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도화임본』의 원화를 그린 이도영이 1906년 휘문의숙에서, 1910년대에는 보성중학교에서 도화교사로 활동하였다. 도쿄미술학교 유학생이었던 고희동이한복은 각각 1910년대 후반과 1920년대에 휘문고보에서 도화교사로 있었다. 그밖에도 화가 이마동 · 이영일 · 서진달 · 서동진 등도 도화교사로 활동하며 근대적인 미술수업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도화는 개화기에 도안술로 채택되어 일제강점기를 거쳐 미술의 개념으로 변화하였다. 도화 교과를 통하여 미술의 개념이 전파되었으며 근대적인 미술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도화 교과서에서부터 일본 도화교과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일제시기 동안에는 일본의 교과서와 거의 유사하여 식민지 교육의 일환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한국미술교육사 연구: 미술교육 100년의 흐름(1895-1995)』(박휘락, 예경, 1998)
「근대적 ‘미술’ 개념의 형성과 미술 인식」(윤세진, 『한국 근대미술과 시각문화』, 조형교육,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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