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뷔페음식점은 1950년대 등장하여 1980년대 일반화된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요식업소이다. 큰 식탁에 다양한 음식을 차려 놓고 손님이 그릇을 집어 각자 덜어 먹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한국에서는 1958년 국립중앙의료원 구내 동쪽에 있던 바이킹식당이 그 시초이다. 초기에 양식(洋食)으로 구성되었던 뷔페는 점차 한식(韓食)의 비중이 높아지고, 한국인에게 친숙한 각종 외국음식이 추가되었다. 뷔페음식점에는 일반 고객이 개별적으로 방문하기도 하지만, 각종 행사 및 잔치에 참가하는 단체 손님의 이용이 많다.
정의
1950년대 등장하여 1980년대 일반화된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요식업소.
#연원과 변천 한국에 처음 등장한 뷔페음식점은 1958년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의료진이 설립한 국립중앙의료원 구내 동쪽에 있던 바이킹식당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인이 단독으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데 제한이 있었다. 1960년대까지도 뷔페식 상차림 또는 뷔페음식점을 경험한 한국인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1970년대 초 조선호텔이 국내 호텔 중 최초로 뷔페음식점을 열었다. 1970년대 말에는 호텔 내 뷔페음식점의 설치가 이어졌고, 1980년대에는 뷔페음식점이 특급 관광 호텔의 필수 부대 시설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뷔페식 한식당이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뷔페음식점이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집에서 열던 돌잔치, 결혼식, 환갑잔치 등의 각종 행사를 집밖의 상업 시설에서 치르게 되면서, 뷔페음식점이 잔치에 적합한 선택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이후로는 각종 모임과 행사를 뷔페음식점에서 치르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뷔페음식점의 특징은 다양한 식단과 화려한 음식 진열, 풍부한 양의 음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갖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큰상에 늘어 놓고 손님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음식을 내놓아야 제대로 된 손님 대접이라고 여기는 한국의 잔치 방식에 부합한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뷔페음식점은 한국인이 애용하는 잔치의 장소로 부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뷔페음식점은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함께 식사할 수 있어 효율적이며, 식사 시간을 지키기 어려울 때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장점도 지니고 있다.특징
참고문헌
단행본
- 주영하·양미경·조희진·김혜숙·조헌목·양영균, 『두 가지 스타일의 한국 결혼식-전통과 현대의 이중주-』(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1)
논문
- 모수미, 「우리나라 급식의 역사를 말하다-Ⅴ. 뷔페(Buffet) 잔치음식문화의 도입-」(『국민영양』 349, 대한영양사협회, 2013)
- 모수미·최경숙·김창임·이수경·정상진·최선혜, 「호텔 부페음식에 관한 실태조사 제1보-부페식당 이용자의 식행동에 관한 설문조사-」(『한국식문화학회지』 6-2,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1)
- 최경숙·모수미, 「호텔 부페음식에 관한 실태조사 제2보-여성들의 부페식당에서의 끽식행동에 관한 연구-」(『한국식문화학회지』 6-2,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1)
기타 자료
- '뷔페 인구가 늘어간다', 『경향신문』(1982.04.13.)
- '뷔페식 한식식당 인기', 『동아일보』(1986.09.3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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