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도시에서 간이주점으로 등장한 포장마차는 주로 도시의 공터나 길가에 위치하며,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영업한다. 도시 노동자와 학생이 주요 고객이다. 자리를 정해 두고 장사를 하지만, 포장마차를 장사하는 곳에 항상 세워 두는 고정형 상인과 매일 영업을 위해 포장마차를 끌고 나왔다 갖고 돌아가는 이동형 상인이 있다. 이동형 포장마차는 장사를 하지 않을 때는 한적한 장소에 세워 두기도 하지만, 일정 금액을 내면 포장마차를 맡아 주는 주차장 등의 보관소를 이용하기도 한다. 현재는 수레가 아니라, 트럭 형태의 포장마차가 등장하여 이동과 보관이 편리해졌다.
포장마차는 외형에서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재질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였다. 1950년대에는 수레의 네 모서리에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두꺼운 광목천으로 포장을 쳐서 외부와 영업 공간을 분리하고 비바람을 막았다. 이후 기둥의 재질은 나무에서 금속으로, 광목천은 비닐, 방수포 등으로 달라졌다. 또한 포장마차의 조명은 카바이드에서 백열등, 형광등, LED로 바뀌었다. 포장마차의 영업 공간은 수레의 네 변에 접이식 선반을 달아 세 변에서 손님이 음식을 먹고, 나머지 한 변에서는 주인이 조리를 하는 데 쓴다. 이보다 영업 공간을 확장시킨 경우에는 별도의 탁자와 의자를 설치하여 접객한다.
포장마차의 운영은 대개 별도의 직원 없이 여성 단독 또는 부부가 한다. 여성 혼자 영업하는 곳에서도 포장마차의 이동, 설치와 정리, 물 길어오기 등의 작업은 남성의 도움을 받는다. 노점상이라 상하수도 설비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물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따라 설거지하기가 곤란하므로, 포장마차에서는 식기에 비닐봉투를 씌워서 음식을 담아냈다가 그릇을 치울 때는 비닐만 벗겨서 버리는 방식을 흔히 쓴다. 가볍고 쉽게 파손되지 않는 값싼 그릇을 사용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멜라민, 스테인리스 등의 재질로 된 식기를 주로 사용한다. 한편, 포장마차의 대부분은 사업자 등록이 없는 무허가 노점상이므로 합법적인 카드 결제는 불가능하고, 현금 거래 위주이다.
포장마차에서는 어느 곳이나 비슷한 종류의 음식을 팔지만, 간단한 방법으로 짧은 시간에 조리할 수 있는 저렴한 음식을 주로 판매한다. 광복 이후 등장한 포장마차의 초기 메뉴는 참새구이, 닭발구이, 간, 천엽, 삶은 오징어, 꽁치 소금구이, 북어 양념구이 등이었다. 1950년대에는 6·25전쟁 이후 생계를 위해 월남민이 대거 포장마차 영업을 개시하면서, 포장마차의 메뉴에 물냉면, 순대, 빈대떡, 메밀묵, 만두, 가래떡 석쇠구이와 같은 북한 음식이 들어왔다. 아울러 부산 피난 시절의 영향으로 홍합, 멍게, 성게, 해삼, 오징어 등의 해산물이 포장마차의 메뉴가 되었다. 특히 1972년 조수보호법이 시행되기 이전까지는 참새구이가 포장마차의 대표 메뉴였으나, 1980년대 이후의 메뉴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술은 소주, 막걸리, 맥주 등을 취급하고, 안주류로는 족발, 순대, 편육, 닭발, 닭똥집(닭모래집), 꼼장어(먹장어) 구이, 산낙지, 멍게, 해삼, 생선구이, 꼬막, 어묵국, 홍합탕 등을, 간식류로는 김밥, 우동, 떡볶이, 빈대떡, 국수, 만두, 튀김 등을 판다.
1980년대 중반에는 전기와 수도 시설을 갖춘 포장마차가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등장하였고, 이후 한층 고급화, 대형화된 포장마차가 다수 생겨났다. 현재는 기존의 포장마차가 지닌 이미지를 재현한 주점이 ‘실내포장마차’ 또는 ‘포차’란 이름으로 각 곳에서 영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