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식육목 고양이과 표범속에 속하는 대형 육식 포유동물이다. 육상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 소비자로 암수가 떨어져 홀로 생활한다. 100년 전에는 서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에 이르는 아시아 전역에 걸쳐 8개 아종이 분포하고, 10만 마리 이상의 야생 호랑이가 살았지만, 오늘날 분포 면적은 93%가 감소하였고, 2023년 기준 야생 생존 개체 수는 95%가 감소한 5,574마리가 생존하고 있다. 8개 아종 가운데 3개 아종도 절멸하여 국제적으로도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식육목 고양이과 표범속에 속하는 대형 육식 포유동물이다. 육상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 소비자로 암수가 떨어져 홀로 생활한다. 가장 오래된 호랑이의 화석은 약 200만 년 전에 중국 북부에서 출토되었으며, 한국호랑이보다 약간 작은 체구로, 현재 호랑이가 분포하고 있지 않는 일본에서도 그 시대보다 조금 뒤의 호랑이 화석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동북아시아 전역에 걸쳐 서식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호랑이 분포상 온대와 아열대 기후대 지역을 주 서식 분포지역으로 삼고 있어, 약 200만 년 전 동북아시아 일대는 기후가 온화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호랑이의 서식 북단은 시베리아 동부지역으로, 약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 전에 이주하여 적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60~55만 년 전의 평양 상원 검은모루유적지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호랑이의 화석이 출토되었다.
호랑이의 호는 범[虎], 랑은 이리[狼]의 한자음으로서, ‘어젯밤 “호랑이[범과 이리, 즉 맹수]”가 나타나서 돼지를 잡아갔다’라고 하는 막연한 경우에 사용하여 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신문 등에 호랑이 출몰, 호환 등 소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광복 이후 범 대신 호랑이가 虎를 지칭하는 사회적 언어로서 지위를 획득하여 오늘날 사용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갈범은 일반적으로 한자어로 갈호(葛虎)라고 쓴다. 세로줄 무늬[條文]가 있는 범[虎]을 지칭하며, 막연히 호랑이를 일컫는 경우, 단순히 범 또는 주1의 ‘범이’를 사용한다. 표범과 구별하여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갈범’이라 사용한다.
조선시대 호랑이를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된 한자어로 호(虎), 대충(大蟲),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령(山靈), 산중호걸(山中豪傑)이 있고 그외 호랑이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암범[牝虎], 새끼 호랑이를 칭하는 개호주, 갈가지, 개만한 크기의 호랑이 새끼를 칭하는 개갈가지, 왕대(王大) 등이 있다. 방언으로는 갈범[륙진], 갈호[함남, 륙진], 갈오[륙진], 호라이[륙진, 함남], 호래이[강동], 개글가지[범새끼], 붬[평북] 등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 범[큰범], 산군, 산신, 줄범, 칡범, 갈범, 조선범이라 불렀고, 범[虎豹]은 오늘날의 호랑이와 표범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특히 구분할때는 큰범[虎]과 작은범[豹범]으로 불렀다. 옛 사람들은 큰범과 작은범이 교미하여 새끼도 낳는다고 생각하였고, 그 새끼를 수호(水虎)라 하였다.
학명은 Panthera tigris altaica, Temminck 1844 이며, 영명은 Siberia Tiger, Amur Tiger, Korean Tiger 등 다양한 지역 이름을 가져 있다. 호랑이는 동남아시아에서 동북아시아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8개의 아종으로 나뉘고, 한반도에 분포하는 한국호랑이는 흑룡강성과 길림성 등 중국 동북지역에 서식하는 동북호랑이와 러시아 연해주에 서식하는 시베리아호랑이와 같은 아종이다.
한국호랑이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독일학자 Brass가 1911년 한국호랑이의 체구는 중국 동북호랑이나 시베리아호랑이에 비해 작지만, 털은 동북호랑이와 같이 길면서도 두텁고, 몸색은 대홍색(帶紅色)으로 줄무늬의 폭은 넓고 매우 선명하다고 기록하였다. 1911년 전라남도 영광 불갑산에서 포획된 호랑이의 표본을 조사한 일본학자 모리 타메조박사의 기록에 의하면 모피는 등 부위의 색이 대홍황색(帶紅黃色)으로 불규칙하게 폭이 넓고 선명한 검은 줄무늬가 많이 존재하고 눈부위, 뺨, 몸의 아랫면은 순백색으로 현저하게 검은 줄무늬가 있으며 허리 부위보다는 적다. 꼬리의 기부는 허리와 같은 색이지만 끝 부위에 다가갈수록 옅어져 담황색이 되고 있다. 꼬리의 기부에는 4개의 검은 무늬 고리가, 그다음 부위에는 6개의 검은 무늬 고리가 있다고 한다.
한국호랑이는 과거 한반도 서부에는 적고, 동부 및 북부에 많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남한 지역의 호랑이는 현재 전라남도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표본 1점만 남아있다. 북한 평양시 상원리에서 발견된 검은모루유적지에서 약 60~55만 년 전 한국호랑이 화석이 출토되었는데, 한반도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호랑이의 화석이다.
호랑이는 23년에 1회 번식하고, 겨울에 교미하여 103115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56월에 보통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주식은 동물성으로, 체중 30㎏의 노루에서부터 수 백㎏에 이르는 불곰에 이르기까지 포식한다. 주로 산림에서 단독으로 생활하며, 주 생활영역의 면적은 100400㎢이고, 일일 행동거리는 1520㎞이며, 일일 최고 이동거리는 80~120㎞로 해질녘에서 해뜰 무렵까지 활발히 활동한다. 수명은 야생에서 15년 전후로 알려져 있고, 사육 하에서는 최고 20년의 기록이 있다.
한국호랑이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증보문헌비고』의 백제 편으로 시조 온조왕 13년 2월에 다섯 마리 호랑이가 성에 들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많은 호랑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각 시대의 대표적인 자료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한편 『일본서기』에는 서기 545년 11월에 백제에서 호랑이를 잡아 그 가죽을 가져왔다고 최초로 전해진다. 고구려, 신라, 고려, 발해 등을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호환에 대한 기록이 많은데 특히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한국호랑이는 일본 장수들의 무용담 경쟁으로 발전하여 약 열 마리의 한국호랑이가 생포 또는 포획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원전 연대 및 내용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23년 정월 남산에 호랑이 2마리 출현. 싸워서 잡음 삼국유사 신라 원성왕때 흥륜사에서 김현은 호랑이 미녀와 만남. 김현은 호랑이의 은덕으로 입신출세, 은덕을 기려 호원사를 건립함 고려사 고려 태조 6대조가 사냥을 나가 호랑이에 의해 생명 구제받고 부부가 됨. 그 후 본처와의 사이에서 해몽에 의해 아들을 얻음. 이조역대실록 호랑이에 의한 사람과 가축 피해가 많음. 특히 임란중 영남 지역 심각. 한양에도 출현 궁내에도 때때로 나타남. 이조야사 호환이 많아 왕의 근심이 끊이질 않음.
호랑이와 김치(평북 용천지방) 호랑이와 목동(전북 고창지방) 호랑이가죽(평남 안주지방, 평북 정주, 선천, 용천, 철산지방) 호랑이의 구슬꿰기(전북 순창, 정읍, 고창, 경북 풍기지방) 사람을 먹이로 한 호랑이 포획(경북 풍기, 평북 용천, 선천지방) 호랑이 뒤집기(평북 선천지방) 호랑이와 중(평북 정주지방) 소금장수와 호랑이, 토끼(평북 삭주, 용천, 선천, 박주, 창성지방) 수달과 호랑이와 토끼(충남 부여지방) 호랑이와 곰과 도둑(평북 용천, 철산지방)
호랑이가 크게 포효하다(관직에 들어가는 징조) 호랑이 등에 탐(나쁜 일이 생길 운) 호랑이가 집안에 들어오다(관직이 높아 질 운) 호랑이가 꿈적도 안함(관직에 행운이 있음) 호랑이를 죽임(중요한 관인을 얻을 운) 호랑이를 물다(남자 아기를 낳을 운)
호랑이는 한민족의 생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중 하나이다. 흔히 지난 시절에 집안 어른이 어린 손자와 손녀들 앞에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하고 이야기 첫머리를 꺼내는 풍습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풍습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선인들은 생활 속에 해학과 여유를 지니고, 맹수의 왕인 호랑이까지도 재미나게 묘사하여 생활의 철학을 전파하였다. 그 외에도 우리민족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호랑이와 관련한 속담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새끼를 잡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호랑이가 크게 울면 벼슬자리를 얻는다’ ‘호랑이를 타면 악한 일이 없고, 집안에 들어오면 벼슬이 무거워 진다’
‘맹호부대, 백호부대 등 군대의 용맹을 상징’
위의 사례 이외에도 우리의 전통 설화에서는 호랑이는 효행의 상징 및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 신비스런 이적 행위와 관련하여 등장하며, 이와 대조적으로 민담에서는 어리석고 욕심 많은 짐승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심판자’ 박지원의 [호질, 유몽인의 호정문, 이광정의 호예], ‘사랑과 희생의 열정, 성스러움의 화신이자 종교적 본능 및 영혼의 인도자’[신라시대 김현감호 설화 속의 호원사 창건], 현대에는 ‘고독한 지배자’[조동화의 이야기는 이야기에서]로 등장한다.
호랑이는 세계 각지에서 경외의 동물로서 인식되어져 왔다. 현재 파키스탄 인더스 계곡의 5000년전 주민들은 호랑이의 모습을 벽화로 남겼다. 4000년전 서아시아에서 인도로 들어 온 아리아인들의 서사시에도 호랑이는 자주 등장한다.
옛적부터 호랑이는 미와 힘과 위엄의 상징으로서 존재해 왔다. 그리스신화 속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인도의 여신 듈가는 호랑이의 등에 타고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중국에서도 호랑이는 산림의 왕으로서, 이마의 ‘왕(王)’자 모양과 등의 ‘대(大)’자 모양을 일컬어 ‘대왕(大王)’이라 칭하여 두려워하였다.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등에서 사용되는 60년 주기의 음력에서는 호랑이는 십이지신 중 하나로서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생활 속에 공존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호랑이해에 태어난 남아는 악을 물러 칠 수 있는 힘을 가졌다하여 건강하게 자라도록 비는 마음으로 이마에 ‘왕(王)’자를 그렸다. 또한, 호랑이 모양의 모자나 호랑이 형상을 수놓은 신발, 침구 등은 사용하는 이를 강하게 한다고 믿어져 귀중한 선물로서 여겨졌다.
중국에서 발단하여 한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퍼진 풍수신앙에서 동서남북 4개 방위 가운데 백호는 서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수호신 청룡과 비교되고 있다. 북한의 평안남도 강서구역 덕흥리 고구려 고분 벽화의 백호도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문화예술 작품이다.
1906-07-30 공립신보 맹호해인(인명피해) 1907-12-04 대한매일신보 구능촉호 증산군 (증산군에서 개가 범을 잡아) 1908-02-14 대한매일신보 대호입궁 (창경궁에 대호 들어옴) 1908-11-08 대한매일신보 강원 삼척 미로 호환 1908-12-03 皇城新聞 강원 인제 대호 포획 1908-12-08 皇城新聞 한성 삼청동 대호 출현 1908-12-16 공립신보 수렵법공포 (조선인 수렵 애로) 1909-02-18 皇城新聞 강원 춘천 대호 교인(사람을 물다) 1909-03-11 대한매일신보 용산 호랑이 출몰 1909-04-14 신한민보 한성 진입로 맹호 출몰 1909-07-06 신한민보 전남 함평군 맹호 출몰 1909-11-18 大韓每日申報 강원 양구 대호 행인 교식(뜯어먹음)
1921년 이후 남한지역 호랑이 출몰, 피해, 포획, 사살 언론 기사는 일제강점기 42건, 광복 이후 1967년까지 11건이다.
예부터 한반도 내륙과 주변 연안 섬 지방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과 가축의 피해가 해마다 발생하여,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지냈다는 역사 기록과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신문 기사가 많다. 이러한 범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시대에 ‘착호군(捉虎軍)’이라는 범[호랑이와 표범] 포획 전문 군부대도 있었지만, 피해를 방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20세기 초 한반도에는 100150마리의 범[호랑이]이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며, 한 마리 범이 생존을 위해 1년에 670마리의 멧돼지, 노루, 사슴과 같은 중대형 야생 동물을 먹이로 하는 것을 고려하면 100년 전 한반도의 자연 생태계는 대단히 건강하고 야생 동물은 풍부하였다고 생각된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선사시대 바위에 새겨놓은 범[호랑이와 표범]의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다. 대한제국 말기 무렵까지는 야간에 한성 외곽 산에서 시내로 호랑이가 내려와 유유히 사대문안을 배회하여 당시 궁성에서까지 야간 출입을 삼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실시된 해수 구제사업의 결과 멸종 위기에 처해져 야생의 한국호랑이는 남한 지역에서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라남도 곡성에서 1944년 포획된 1마리가 저자가 확인한 남한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된 한국호랑이다. 현재 북한 지역에서는 야생 호랑이가 10마리 이하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으며, 남한에서는 멸종위기야생생물Ⅰ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호랑이는 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 황해도 및 강원특별자치도, 전라남도에 이르는 종단산맥[백두대간]에 많이 서식하였다. 북방 지역은 호랑이가 심산유곡에 서식하고, 마을이 멀리 떨어져 있어 비교적 호랑이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전라남도는 깊은 산이 적고 민가가 가까워 먹이를 찾아 촌락에 호랑이가 연중 출몰하여 가장 피해가 심했다. 이런 연유로 오히려 전라남도에 능주[현 화순군]에 곤도[近藤孝一, 히로시마현 출신], 순천에 오오시마[大島鶴平, 오오이타현 출신], 광주에 김관일(金寬日), 다나카[田中惣太, 시마네현 출신] 등 호랑이 명사냥꾼들이 있었다
조선 개항 후 외국인 선교사와 서양 각국의 대사와 가족, 군인, 교육자와 지식인, 기술자들이 한반도를 찾아왔다. 그들 중 일부는 한반도를 여행하면서 당시 조선 사람들의 생활, 풍습, 문화, 종교를 비롯하여 자연과 야생동물에 대한 그들의 소중한 경험을 글로 써 남겼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 여성 회원인 이사벨 버드 비숍의 『한국(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1897] 은 외국인들의 조선 기행문 가운데 백미에 꼽힌다. 한성대로를 호랑이가 다니고 왕이 거주하는 궁 안에도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한국호랑이는 용맹함과 강인함으로서 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떨쳐왔다. 동북아시아 지역 호랑이의 한반도 지역 개체군으로 중국의 동북호랑이[만주호랑이]나 시베리아호랑이에 비해 다소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중엽 동북아시아 일대의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한국호랑이가 가장 용맹하기로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당시 러시아 및 만주 지역 일대의 사냥꾼들은 한국호랑이를 가장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총기를 이용한 사냥이 민간에까지 보급되면서, 호랑이도 다른 야생동물처럼 멸종 위기에 처해졌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해수 구제’에 의해 한국호랑이는 남획되었다. 남한 지역에서는 1924년 전라남도 지역에서 6마리가 포획된 기록이 남아있고, 민간에서는 1950년대까지 남한 지역에서 잡혔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에 포획된 한국호랑이의 수는 확인된 자료만으로도 108마리이며, 지역별로는 북부의 함경도지역에서 가장 많은 한국호랑이가 포획되었다.
과거 기록에서는 북한 지역에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였다고 전해지나, 현재 북한 지역에서 야생 상태의 한국호랑이 수는 1990년대 후반 러시아와 북한 학자들의 조사에 의해 10마리 미만으로 보고되어 있다. 그 이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1964년 11월 평안북도 자성군에서 1마리 포획되었고, 1965년 10월에는 함경남도 부전군 여운리에 호랑이가 나타나 수일동안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한 뒤, 마을 외곽의 옥수수밭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최근에는 1994년 황해도에서 호랑이가 출현하였다하여 호랑이 생포단이 현지에 파견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다. 북한에서는 1959년이후 호랑이는 수렵동물에서 제외하였고, 현재 백두산 지역, 자강도 와갈봉 일대, 강원도 고성군 추애산 일대의 호랑이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호랑이의 급격한 감소 원인은 개발에 의한 서식지 훼손, 수렵과 밀렵, 해수 구제 등을 일컬을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특히 밀렵의 보고가 증가하여 개체 수 감소의 최대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밀렵의 주된 목적은 과거에는 호피였지만, 근래에는 한방약의 원료로서 상업적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한방약의 원료로서는 호골로 부르는 뼈가 거래의 중심이다. 류마티스, 골다공증 병의 진통에 효력이 있다는 이유로, 예로부터 귀중한 약으로서 취급해 왔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 매년 수요가 증가하여 호골주나 호골 약제로서 동남아시아와 홍콩, 대만의 한약국에서 대량으로 시판되고 있다. 어른 호랑이 1마리는 건조 중량으로 11㎏의 호골이 생산된다. 모피 수요는 감소 경향에 있고, 고기도 이용되고 있지 않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 인도차이나에서는 일주일에 한 마리꼴로 밀렵되어, 일년 동안 서식 수의 약 10%가 감소하고 있다 한다. 인도 정부는 1995년 1월부터 10월사이에 약 500㎏의 호골을 압수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1994년에서 1995년 8월 사이에 50마리의 호랑이가 밀렵되고, 66건의 밀렵 사건이 보고되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1997년 6월에서 7월 사이에 시베리아호랑이가 8마리가 밀렵 때문에 살해당하였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하였다. 이 가운데 6마리는 중국과 접경지역인 비킨강유역의 라우카 마을 근교에서, 나머지 2마리는 프리모스키지방에서 밀렵되었다.
호랑이는 먹이, 은신 장소, 물이 필요하며, 서식에 필요한 면적은 먹이동물의 밀도에 의존한다. 일 년 내내 먹이동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서식 면적은 암컷 1039㎢, 수컷 30105㎢이다. 먹이 공급이 일정하지 않고, 계절에 따라 변화가 큰 러시아에서 암컷은 100400㎢, 수컷은 8001,000㎢의 한 마리 당 서식 면적이 보고되고 있다.
인구의 증가에 따라 삼림이 감소하고 자원은 고갈한다. 또한, 야생생물의 서식지는 농경지로 개간되고, 호랑이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은 사라진다. 현재 가까스로 생존하고 있는 호랑이의 서식지는 거의 대부분이 분단, 고립되고 개발되어 도로로 단절되어 있다.
현재 서식지는 분단되어, 지금 거의 모든 개체군은 100마리 이하로서 그들 중 약 40%가 번식 가능한 개체들이다. 결과적으로 근친교배가 보고되며, 이에 따라 유전적다양성이 저하하여, 출생이 감소하고 존속 가능성이 감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