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이)

시베리아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동물
생물
고양이과에 속하는 포유동물.
내용 요약

호랑이는 고양이과에 속하는 포유동물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고 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옛날에는 호환이라 하여 민가에 나타나 피해를 줄 정도로 많았으나 1946년 평안북도 초산에서 1마리를 잡은 것을 마지막으로 멸종되었다. 원시시대에는 경외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었고,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삿된 귀신을 물리치는 신통함이 있다고 믿는 산신신앙으로 자리잡았다. 풍수에서는 우백호로 등장하며 설화나 민화에서는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가 있고 신성한 영물로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대상이다.

정의
고양이과에 속하는 포유동물.
개설

범이라고도 하며, 학명은 Panthera tigris altaica(TEMMINCK)이다. 호랑이는 서울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며, 그 밖의 여러 설화를 비롯하여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역(周易)』에서 호랑이의 방위를 지칭하는 인방(寅方)도 만주와 우리나라를 지목하는 동북방인 것을 보면 우리 민족과 호랑이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형태 및 생태

등쪽의 색은 암적황색이고, 사지에 이르러 약간 담색이 된다. 등쪽에는 불규칙한 검은 무늬가 많이 있으나 앞다리와 앞면에는 적다. 주둥이 끝은 암연피색(暗軟皮色)이고, 눈과 뺨 밑은 흰색이며 검은 점이 있다. 머리 위와 등의 뒷부분, 복부, 뒷다리에는 뚜렷한 갈색 반점이 있다.

꼬리의 기부(基部)는 등쪽과 같은 색이며, 끝과 뒷면은 대회백색(帶灰白色) 또는 연피색(軟皮色)으로 8~9개의 둥근 검은 무늬가 있는데 꼬리 끝 가까이에 있는 2개는 더욱 뚜렷하게 검은 편이다. 귀 뒤는 광택이 있는 흑색이고, 귀 끝 가까이에는 흰 점이 있다. 겨울털은 여름털에 비하여 담색이고 길며, 수염은 백색이다. 몸길이는 180㎝, 꼬리길이는 87㎝에 달한다.

고양이속의 여러 가지 성질과 습관을 지니고 있으며, 동작이 매우 빠르고 매사에 조심성 있게 행동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 먹이가 되는 다른 야생동물에 접근하며, 자기 몸이 보이지 않게 걸어가는 동작과 모양은 마치 뱀이 땅 위를 기어가는 동작과 비슷하다. 먹이를 찾아서 하루 동안 보통 80∼100㎞를 달린다. 보폭은 80㎝에 달하며, 항상 뒷발이 앞발자국을 되밟는 습성이 있다.

뛰는 것이 매우 빨라서 한번의 도약이 4m에 달하며, 다른 야생동물을 쫓아갈 때에는 7∼8m의 먼 거리를 무난히 뛰며, 큰 바위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도약할 때에는 10m까지도 뛰어내린다. 헤엄을 잘 치며 무더운 여름에는 냇가로 내려가서 산간 계류의 선선한 곳에서 쉬고, 낮에는 모기와 등에를 피하여 폭포수가 떨어지는 물안개가 낀 물가의 바위 위에서 낮잠을 잔다.

산의 급한 경사지나 바위 위를 잘 오르내리며 개에게 추격을 당하게 되면 나무의 경사가 45° 정도만 되면 나무 위를 자유롭게 기어 올라간다. 나무 위에서 내려올 때에는 회전하여 머리를 밑으로 향하여 내려온다. 여름철의 무더위를 제일 견디기 어려워한다. 따라서, 6∼7월에는 1,500m 이상 되는 심산유곡에서 살고, 8월이 되면 다소 밑으로 내려와서 산다.

겨울에는 ―30℃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년 중 이 시기에는 특히 피하지방조직의 발달이 잘 되어 배와 겨드랑이 밑의 지방층은 5㎝ 두께로 두꺼워진다. 또, 달 밝은 밤에 눈 위에서 뒹구는 모양은 마치 개가 눈이 오면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과 흡사하다. 눈이 많이 온 겨울에는 한겨울 동안 눈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배 밑과 발에 있는 털이 다 빠지게 되며, 따라서 오래된 발자국을 밟으려고 힘쓴다.

해가 진 뒤와 해가 돋기 직전을 제일 좋아하지만 낮에도 수시로 먹이가 되는 야생동물을 찾아다닌다. 배가 부르면 하루 종일 드러누워 낮잠을 자다가 해가 지자마자 활기를 띠고 약탈적 행동을 시작한다. 배가 고픈 호랑이는 밀림의 넓은 지역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높은 지대를 선택하려고 힘쓰고, 배가 부른 호랑이는 특히 추울 때에는 나무가 무성한 장소를 선택하며, 그때 그때마다 항상 장소를 바꾸는 성질이 있다.

만약, 먹이가 되는 동물을 잡기 위하여 밤에 활동하는 것이 불편할 때에는 낮에 대기한다. 또 먹이가 되는 동물을 잡기 위하여 이동할 때에는 좌우 양사면(兩斜面)이 잘 보이는 산마루를 좋아하며 때때로 계곡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뾰족한 바위 위에서 엽장(獵場)을 내려다보며, 먹이가 되는 야생동물을 확인하게 되면 뱀과 같이 미끄러져 내려가서 등 뒤에서 덮친다.

교미(交尾)시기와 교접(交接)은 12∼1월 초순경에 시작되며, 젊은 호랑이는 2주일간 늦어진다. 이 시기에 수컷은 이산 저산 숲이란 숲은 모조리 뒤져서 암컷을 찾아 헤맨다. 수컷 여러 마리는 암컷 한 마리를 두고 큰 투쟁을 벌인다. 제일 힘이 센 호랑이는 특권을 가지고 욕정(欲情)을 충족시킬 때까지는 다른 수컷이 암컷 있는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다.

수컷의 투쟁은 맹렬하며 투쟁장소는 항상 피투성이가 되는데, 발톱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투쟁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일은 없으며, 약자는 패배당하면 그 투쟁하던 장소를 강자에게 양보하고 새로운 행운을 찾아서 물러서게 된다. 임신기간은 98∼110일이며 1회의 새끼 수는 3마리이다.

암컷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바위로 된 동굴이나, 바위와 바위 사이에 움푹 팬 곳, 절벽의 동굴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보금자리는 먹이를 찾는 데에서 너무 멀지 않은, 즉 멧돼지와 여러 가지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을 선택한다. 또, 일반적으로 보금자리는 바위 위의 자연히 움푹 팬 곳에 만들며, 나무의 마른잎, 마른풀을 보금자리 밑에 깐다.

암컷은 항상 경계하기 위하여 결코 일직선으로 보금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바위를 밟고 다녀서 자신의 발자국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서는 맹목적으로 용감하여져서 모성애를 발휘하며 미친 듯이 엽사(獵師)에게 덤벼드는 성질이 있다.

갓난 새끼는 어린 고양이 크기이지만 성장속도는 매우 빠르다. 2개월이 경과되면 어미는 새끼들을 보금자리에서 나오게 한 뒤에 새끼들에게 반쯤 죽은 야생동물을 운반하여다가 육식동물로서의 기술을 습득시키기 위하여 훈련을 시작한다. 6개월간 젖을 먹이며, 매일의 일과로서 짐승을 잡는 기술을 연마, 습득하게 하여, 9개월째부터는 어미호랑이와 동반하여 수렵을 하기 시작한다.

새끼들은 1, 2년간 어미 곁에 머무른 뒤 서서히 독립생활에 들어가지만, 어미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는 않는다. 3년 뒤에야 좋은 서식장소를 찾기 위하여 방랑하기 시작한다. 호랑이는 생후 5년이 되어야 비로소 성숙하며, 수명은 15∼20년이다.

1년에 두 번 털갈이를 하는데 그 시기는 9월과 3월이다. 검은 줄무늬와 코와 발의 털은 몸의 다른 부분보다 빨리 털갈이를 하며 털갈이 기간은 약 2주간이다. 또, 길고 날카로운 발톱도 매년 바뀌며, 바뀌는 시기는 12월경이다.

호랑이의 식성은 자기 자신이 잡은 신선한 야생동물의 고기만 먹는데, 시장기가 날 때에는 죽은 고기, 오래된 고기도 먹는다. 주식물(主食物)은 멧돼지이며 노루·산양·곰·사슴들이 살고 있는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덤벼들어 잡아먹는다. 호랑이는 도망가는 야생동물을 쫓아가서 잡는 일은 거의 없다.

야생동물을 잡기 위하여 동물에게 소리 없이 접근하여 도약하면서 넘어뜨린 뒤에 목덜미를 물어뜯는데, 멧돼지는 목덜미가 굵어서 그 앞목을 물어뜯어 죽인다. 호랑이의 호화찬란한 생김새, 번개같이 빛나는 눈, 짐승들이 싫어하는 독특한 냄새로써 다른 야생동물에게 마비와 공포를 주게 되어 다른 동물들은 마치 최면술에 걸려든 것 같이 되어 도망하지 못하게 된다.

큰 멧돼지를 물어뜯어 죽인 뒤에는 조용한 개울 근처로 끌고 가서 넓적다리와 복부(腹部)의 연한 부분부터 먹기 시작하여 배가 부르면, 물을 많이 마시고 그 옆에서 쉬면서 서서히 여러 번 물을 마시고 또 계속하여 잠을 자는데 하루 이상 푹 쉰다. 멧돼지 다음으로 좋아하는 동물은 개·말·소·염소 같은 것인데 큰 짐승들의 뼈가 많이 붙어 있는 곳과 내장은 결코 먹지 않으나 노루·멧돼지의 새끼, 개와 같이 작은 동물은 전부 다 먹는다.

소화작용을 돕기 위하여 여름부터 가을에는 여러 가지 잡초를 먹는 외에 도토리, 산림 속의 여러 가지 과실, 즙액(汁液)이 많은 머루·다래 같은 것도 잘 먹는다. 때로는 물가에 내려가서 물고기도 잘 잡아먹는다. 음식을 충분히 먹은 뒤에는 산골 냇가로 내려가서 코와 입을 물 속에 담그고 입 속에 남은 고기 부스러기와 피를 깨끗이 씻는 습성이 있다. 겨울에는 물을 얻기가 어려우므로 물 대신 눈으로 목마름을 면한다.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장백산 일대, 중국 동북지방의 소흥안령 일대와 소련의 극동지방, 연해주의 흑룡강 계곡 등에 극히 일부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전에는 백두산 고준지대(高峻地帶) 원시산림과 바위동굴에서 볼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의 연해주 일대의 원시산림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극동지역의 분포권 내에서는 약 200마리가 생존하리라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방에 60∼70마리, 북한에 40∼50마리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나 근거는 희박하다. 현재 동물원에서 기르고 있는 개체는 약 150마리로 집계되었는데, 이 가운데 수컷이 약 70마리, 암컷이 약 80마리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수컷 39마리와 암컷 46마리 및 어린 새끼 등 87마리는 야생이 아닌 동물원에서 출생한 것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경동물원에서는 소흥안령과 장백산에서 포획하여 다른 동물원에 분양을 해주었다. 또한, 러시아(당시 소련)도 1963∼1964년 사이에 약 15마리를 생포하여 다른 동물원에 수출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까지 모두 25마리가 포획되었다.

1918년 강원도 춘성군 가리산에서 수컷 1마리, 1922년 경상북도 경주시 대덕산에서 수컷 1마리, 1946년 평안북도 초산에서 1마리를 잡은 것을 마지막으로 멸종되고 말았다. 국제자연보존연맹의 적색자료목록에 제108호로 수록된 국제보호동물이다.

민간신앙에서의 호랑이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으로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호랑이가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매우 심하여 호랑이에 의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는 환난을 일컬어 ‘호환’이라고까지 칭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885년(헌강왕 11) 2월에 호랑이가 궁궐 마당으로까지 뛰어들어 왔다고 하였으니, 호랑이의 피해가 나라 전체에 걸쳐 매우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산중 혹은 인근 마을에서 마주치는 맹수 중 가장 두려워한 존재가 바로 호랑이였다.

호랑이를 야성의 맹수로 인식하는 것은 단군신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곰과 호랑이는 모두 인간으로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결국 호랑이는 그 야성을 순화시키지 못하고 동굴 속에서 뛰쳐나와 맹수로 머무르고 만다. 이렇게 인간에게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본능은 급기야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되어 살아 있는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고 제사까지 지내는 풍속이 오랜 옛날부터 행하여졌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 서로 간섭할 수 없다.……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풍속은 원시부족국가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호랑이숭배사상은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자리잡게 된다. 즉, 산을 숭배하는 사상은 산속에 사는 숭배의 대상인 호랑이와 연계되어 산신이 호랑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호랑이를 별칭하여 산군·산군자(山君子)·산령(山靈)·산신령(山神靈)·산중영웅(山中英雄)이라고 부르는 데에도 이러한 사상이 엿보이고 있다. 오늘날에도 심마니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깍듯이 대접하고 있다.

그러나 산신을 모셔놓는 산신당에는 호랑이가 산신의 사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호랑이 자체가 산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산신도에 묘사되고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사납기보다는 점잖고 친근하게 표현되고 있다. 호랑이의 자세도 공격적이거나 서 있기보다는 산신의 옆 또는 앞에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도에서의 호랑이 의미를 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의 군자 호랑이는 엎드려 있어도 모든 헤아림이 그 속에 있다”라는 말에서와 같이,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의 신지(神知)를 받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어떻게 관장할 것인가를 헤아리고 있는 사려 깊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소곳이 엎드려 길게 다물고 있는 입 양쪽으로는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인 토치(兎齒)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며, 호랑이의 기상과 기개를 나타내는 꼬리는 소나무 사이로 길게 뻗어 구름 속까지 닿게 하며 화면 전체에서 대각선을 이루고 있다. 눈은 왕방울만하게 그려 전체적으로 아래로 내려뜨린 모습이며, 파란색 금박으로 눈동자를 박아 어둠 속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호랑이의 모습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가 있고 신성한 영물로서의 분위기와 함께 친근한 시골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나타냄으로써 확실하게 선과 정의의 편에 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풍수에서의 호랑이

호랑이는 일찍이 풍수설에서도 중요시되어 왔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는 우주를 진호(鎭護)하고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을 방위신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동쪽에는 청룡(靑龍), 서쪽에는 백호(白虎), 남쪽에는 주작(朱雀), 북쪽에는 현무(玄武)라는 이름을 가진 방위신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 4신은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풍수지리에서는 좌청룡·우백호·전주작·후현무라 하여 매우 중시되었다. 즉, 좌청룡·우백호가 서로 어울려 여러 겹으로 주변을 감싸는 것을 최고의 명당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무덤을 쓸 때에는 좌청룡·우백호를 보아 자리를 정하고 무덤을 보호하는 능호석(陵護石)에는 12지신의 하나로 호랑이상을 새겼으며, 무덤 앞의 석물에도 호랑이상을 조각하였다.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서의 4신은 풍수에서뿐 아니라 부대의 깃발과 포진에도 응용되었다. 12지신은 땅을 지키는 12신장으로 열두 방위에 맞추어서,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를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 이 12지신상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인 성격을 지녔으나 삼국통일 이후는 단순한 방위신으로서 그 성격이 변모해 갔다.

설화에서의 호랑이

우리 설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첫번째는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과 관련된 설화에서와 같이 신령하고 신통한 능력을 지닌 영물로서 표현되는 경우이다. 왕건이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폭우를 피하여 동굴 속에서 친구들과 머무르고 있을 때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굴 입구에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으려 하였다.

친구들과 의논하여 웃옷을 던진 뒤 두 개의 물어올리는 옷의 주인이 희생을 당하기로 하였는데, 두 개의 왕건의 옷을 물어올려서 약속대로 굴 밖으로 나가니, 그 순간 굴이 무너져 간발의 차이로 살아나게 되었으며,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김현의 설화에서와 같이 두 개의 자유자재로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과 교유한다는 내용이다.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던 김현은 한 소녀를 만났는데 이 소녀는 두 개의 변신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소녀를 따라 호랑이굴로 들어가게 되어 소녀의 형제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된 것을 소녀의 기지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형제호랑이의 살생에 대한 천벌이 멀지 않음을 감지한 소녀가 김현의 손에 죽음을 당하여 형제를 살리고 김현에게 공을 돌렸다는 내용이다.

세번째는 인간의 행위에 감동된 두 개의 인간을 도와주는 경우, 또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고 그 은혜를 갚는 경우이다. 이상의 유형이 호랑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라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랑이와 토끼의 설화는 호랑이의 어리석음을 희화적(戱畵的)으로 표현한 유형에 속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꾀 많은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되었다. 토끼는 꾀를 내어 먹을 것이 많은 곳을 가르쳐 줄 테니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호랑이는 토끼를 따라 강변에 가서 꼬리를 물에 담그고 많은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린다. 점점 물이 얼기 시작하여 꼬리가 무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더 많은 물고기가 달리기를 기다리다 결국 물이 얼어붙어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상의 설화에 나오는 호랑이상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섭고 두려운 맹수이지만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동물로서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어리석고 의뭉스러울지라도 결코 간교하지 않은, 오히려 우직함이 돋보이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겠다.

민화 속의 호랑이

우리 민화에서 호랑이는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호랑이에게 삿[邪]된 귀신을 물리치는 신통함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하여 일반 민가에서도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여 삿된 것의 침입을 막는 풍속이 있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벽사의 염원은 호랑이삼재부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삼재는 풍(風)·수(水)·화(火)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정초의 세화(歲畵)나 부적에 호랑이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호랑이의 용맹성을 바탕으로 벽사행위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도라고 추측된다. 또,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의 그림도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무관의 표시로 관복의 흉배에 호랑이를 수놓았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호랑이그림을 걸어두면 관직이 높은 귀한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길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까치·호랑이의 그림이 많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대나무숲에 있는 호랑이그림도 벽사적 의미가 담긴 민화이다.

『담문록(談聞錄)』에 의하면 서방 산중에 인간에게 병을 주는 키가 큰 산귀가 살았는데, 대나무를 잘라 불 속에 던져 큰 소리로 그 귀신을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큰 소리로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과 대나무숲을 그린 그림으로 병귀를 쫓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삿된 존재를 멀리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벽사적·길상적 의미가 강하였다.

생활 속의 호랑이

호랑이는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기도 하였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호랑이의 각 부위가 약재로 이용되고 있다. 즉, 뼈는 사악한 기운과 병독의 발작 등을 멈추게 하여 풍병의 치료제로 쓰이고, 눈은 마음이 산란한 환자에게 쓰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광을 발하는 호랑이의 눈에는 사귀(邪鬼)도 놀라 달아나게 되어 마음을 진정시키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호랑이의 코는 미친병의 치료와 어린이 경풍에, 이빨은 매독이나 종기의 부스럼에, 발톱은 어린이의 팔뚝에 붙은 병도깨비를 물리치는 데, 털가죽은 사악한 귀신을 놀라게 하여 학질을 떼는 데, 수염은 치통에, 오줌은 쇠붙이를 삼켰을 때 사용되었다.

호랑이의 털가죽을 신행 때 신부의 가마 위에 덮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호랑이가 지닌 벽사적 의미에서 실시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혹시 인간의 즐거움을 시기한 잡귀가 새색시를 넘보기라도 할까 미리 잡귀의 범접을 막고자 한 의도이다. 이것은 호랑이의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어 부녀자들이 패용한 데에서도 나타난다. 한편, 단옷날에는 궁중에서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신하에게 하사하는 풍속도 있었다.

참고문헌

『수교집록(受敎輯錄)』
『용재총화(慵齋叢話)』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한국의 호랑이』(국립민속박물관, 1988)
『한호의 미술』(조자용, 삼화출판사, 1974)
『한국동식물도감 7 동물편』(원병휘, 문교부,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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