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동인 ()

회화
단체
1960년에 설립된 미술단체.
정의
1960년에 설립된 미술단체.
개설

학연이나 지연 중심의 기성화단에 대한 저항과 아카데미즘과 국전의 화풍에 대한 반발에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3학년 재학생들이 결성한 단체. 공식적인 대표자 없이 출범했으며 기성 화단의 현실을 ‘벽’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벽’ 앞에서 “창조를 현시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하였다. 첫 전시는 국전 개막일인 10월 1일에 맞춰 국전이 열리던 덕수궁의 정동 골목길 담벽에 40여 점의 작품을 갖고 전시를 열었으며, 총 5회의 전시를 가졌다.

벽동인은 김익수, 김정현, 김형대, 박상은, 박병욱, 박홍도,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 등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3학년 재학생 10명으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비정형의 추상적 화풍에 화포나 판자에 쇳조각, 콘크리트, 자갈, 모래, 마대 등 오브제를 도입하여, 기성화단에 대한 거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설립목적

학연이나 지연으로 부패한 국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반국전’ 시위의 한 양상으로 1960년 10월 국전이 열리던 덕수궁의 담벽 주변에 60년미술가협회전과 벽전이 나란히 가두전 형식으로 열렸다. 가두전시를 열게 된 이유를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형식과 시설, 그리고 예의를 제거하고 오히려 우리들의 개성과 주장에서 오는 보다 생리적인 요구에서 가두 전시의 제약을 무릅쓰고 이의 시도를 감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제1회 벽동인전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재학생 10명이 1960년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비정형적인 화풍의 작품들과 비미술적인 재료를 화포나 화판에 붙인 탈평면적인 작품들을 가지고 덕수궁의 담벽(정동길)에 가두전 형식으로 첫 전시를 열었으나 현재 당시 전시했던 작품들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다. 제2회 벽동인전은 1960년 12월 27일부터 31일까지 동화화랑(동화백화점화랑)에서 열었다. 출품자는 김익수, 김진현, 김형대, 박상은, 박홍도, 박병욱,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였다.

제3회 전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가 어려우며 제4회 벽동인전은 1963년 12월 26부터 31일까지 6일간 서울시 충무로 2가 수도화랑에서 열렸고 출품작가는 김익수, 김정현, 민중식, 박홍도, 박병욱, 성기완,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륭, 이정수 등 11명이었다. 제5회 벽동인전은 1964년 7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중앙공보관 제2전시실에서 김익수, 김정현, 민중식, 박홍도, 성기완, 유병수, 유황, 이륭, 이정수가 참가했다.

현황

제1회 벽동인전 브로셔와 제5회 벽동인전 브로셔가 남아 있을 뿐 현재 기초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브로셔에는 전시명, 전시기간, 장소, 출품자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제1회 벽동인전 브로셔에는 벽동인을 ‘Wall Art Exhibition’으로 영문표기를 했으나 제5회 벽동인전 브로셔에는 벽동인을 ‘Byuck Art Exhibition’으로 영문표기를 했다.

의의와 평가

1960년의 가두전 형식으로 전시를 시작한 벽동인은 기성의 가치와 체제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다.이들의 의식을 통해서, 1960년 4.19가 일어난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한 젊은 작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성의 미술제도와 화풍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미술세계를 모색해 나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전시했던 작품들이 한 점도 현존하지 않고 있으며 작품사진 자료조차도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어 그들의 행위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일보』(1960. 10. 6)
「「벽전」에 대한 소고 - 한국 앵포르멜의 전개과정에 대한 의문」(김미경,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IV: 초기 추상미술의 비평적 재조명』3, ICAS, 2004)
「한국 앵포르멜 회화에 관한 연구」(최순영, 충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집필자
김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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