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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 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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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개념
전통 가악인 가곡 · 가사 · 시조를 잘 부르거나 노래를 짓는 음악인. 선가자(善歌者).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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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악
목차
정의
전통 가악인 가곡 · 가사 · 시조를 잘 부르거나 노래를 짓는 음악인. 선가자(善歌者).
내용

조선 영조 무렵을 분수령으로 하여 전대의 작가들은 대개 한시문(漢詩文)의 작자라 할 수 있는 데 비하여, 이후부터는 우리의 시가를 짓는 이가 대부분 직접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창곡가(唱曲家)였다.

그러므로 김수장(金壽長)은 그가 편찬한 『해동가요』에 특히 이 창곡가인 가객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즉, 그 끝에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두고 그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라에는 풍운(風雲)의 경사가 있고, 집집마다 계옥(桂玉:땔나무와 양식)의 근심이 없어 해마다 풍년이 드니 주림을 모르고 사람마다 가멸하여 괴로움을 모른다. 이와 같은 태평한 세상에 관리(官吏), 시경(市耕), 한유(閑遊), 다혁(茶奕:차와 바둑), 서화(書畵), 문무(文武), 시가자(詩歌者) 등으로 각기 그 생업이 다른 바, 그 중에도 가자(歌者)는 곧 인성(人性)의 화기(和氣)요 국풍(國風)의 맥상(脈祥)인 것이다. 예로부터 가자(가객)는 많지 않고 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후세에 잘 알려지지 않아, 그 아무아무가 비록 창에 능했다 해도 그 성명도, 또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도 소상하지 않고, 한번 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내가 그 예와 이제의 가자의 성휘(姓諱)와 연치(年齒:나이)를 적고 반드시 그 노래의 우열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은 망녕되이 월평(月評)에 비기고자 하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재(千載) 뒤 다행히 이 수전(壽傳)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어찌 좋은 일이 않을까 보랴.”

김수장은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하고, 대개 효종 이래로 영조 39년 『해동가요』를 편찬할 때까지 이름 높던 가객 56인의 이름을 적었다.

이 명단의 맨 처음에 오른 허정(許珽)은 효종 때 승지를 지냈고, 장현(張炫)은 숙종 때 지사(知事)를 역임한 명사임이 분명하다. 또한 김천택(金天澤)은 『청구영언』을 편찬하였고, 이세춘(李世春)은 시조창법(時調唱法)을 개발한 잘 알려진 가객의 한 사람이다.

조선 말기 고종 때는 박효관(朴孝寬), 안민영(安玟英) 등 일세를 진동한 가객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함께 시가집 『가곡원류』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그 뒤로 박수보(朴壽甫), 하준권(河俊權), 하순일(河順一), 하규일(河圭一) 등의 가객이 속출하였으나 가악이 쇠잔하고 미약해짐으로써 탁월한 가객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1926년 이후 당시 이왕직(李王職) 아악부에서 하규일을 초빙하여 가곡, 가사, 시조를 교수한 뒤로 이병성(李炳星), 이주환(李珠煥) 등 선가자(善歌者)를 배출하여 가객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해동가요(海東歌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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