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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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단체
창극의 보존과 발전을 위하여 국립극장 안에 설립된 연주단체.
이칭
이칭
국극단(國劇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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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창극의 보존과 발전을 위하여 국립극장 안에 설립된 연주단체.
내용

1961년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른 1962년 2월 중앙국립극장 직제 제9조(전속단체) 1항에 의거하여 창단되었다. 초대 단장에 김연수(金演洙), 부단장에 김소희(金素姬), 간사에 박귀희(朴貴姬)였으며, 단원은 정원 25명 중 21명으로 창단을 보았다.

창극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창극의 정립을 위해 세워진 이 창극단은 처음에는 국극단(國劇團)이라고 하였고, 1973년 5월 1일 창극단으로 개칭되었다. 단장은 초대 김연수에 이어 박동진(朴東鎭) · 박귀희 · 박후성(朴厚性)으로 이어졌다.

1962년 창단 이래의 활동상황은 1969년까지는 대개 김연수, 박진(朴珍)의 연출에 의한 제1기, 1970년부터 1977년까지는 이진순(李眞淳)이 연출을 전담하였던 제2기, 그리고 그 뒤 거의 허규(許圭)작 · 연출로 이루어진 제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1968년 창극정립위원회(唱劇定立委員會)를 설치하여 우선 사대가(四大歌)의 극본을 정립하려 한 시기로, 종래 창극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판소리 활용에 좀 더 치중하였다. 제2기는 확고한 창극정립의 목표 아래 창극의 전진을 시도한 과감한 전환기로 창극의 재건기로 볼 수 있다. 제3기는 전통적 한국의 판굿에 터전을 잡은 창극의 새로운 방향을 꾀한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공연작품으로는 「춘향전」(1962년) · 「수궁가」(1962년) · 「배비장전」(1963년) · 「춘향가」(1963년) · 「흥보가」(1964년) · 「오대가전(五大歌傳)」(1965년) 외에 「심청가」 · 「강릉매화전(江陵梅花傳)」 · 「광대가(廣大歌)」 · 「변강쇠타령」 · 「가루지기타령」 · 「최병도전」 · 「숙영낭자전」 등 수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1999년 100회 정기공연인 「심청전」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2000년 현재 16년째 지속해온 『완창판소리 시리즈』는 1970년대의 『판소리 감상반』을 모태로 85년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 판소리 입문자에서 전공자에 이르기까지 판소리를 깊게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왔다.

판소리의 주요 애호가 중에는 외국인들도 있는데, 이미 5대가를 영어 · 불어 · 일어로 번역 출간한 바 있는 국립창극단은 ASEM 회의가 열리는 2000년 「춘향전」 공연과 더불어 베세토 연극제의 한국 · 중국 · 일본의 전통예술인이 합동으로 만드는 이색 「춘향전」에도 참여, 창극 국제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벌였다.

참고문헌

『창극사연구(唱劇史硏究)』(박황, 백록출판사, 1976)
「현대창극사(現代唱劇史)」(성경린, 『국립극장삼십년(國立劇場三十年)』, 국립극장,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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