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예조참판, 한성좌윤,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에 호조좌랑(戶曹佐郞)·해주판관(海州判官)·예빈시첨정(禮賓寺僉正)·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합천군수(陜川郡守)로 나갔는데, 당시 합천에 정인홍(鄭仁弘)이 있었으나 그의 집에는 출입하지 않았다.
1614년(광해군 6)에 이이첨(李爾瞻)·정인홍 등이 광해군을 종용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하고 인목대비(仁穆大妃)도 유폐시키자, 그는 직언으로 항소하다가 관직을 삭탈 당하고 축출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부수찬(副修撰)으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자 그 해 여름에는 대구부사(大邱府使)로 임명되었다. 그 뒤에 죽산부사(竹山府使)·형조참의(形曹參議)·좌부승지(左副承旨)·공청도관찰사(公淸道觀察使) 등을 역임하다 예조참판(禮曹參判)으로 재임 중에 병자호란을 당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강화(講和)를 반대하였다.
끝내 성하지맹(城下之盟)이 맺어지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농월정(弄月亭)을 짓고 은거(隱居)하다가, 1638년(인조 16)에 예조참판(禮曹參判)·한성좌윤(漢城左尹)·도승지(都承旨) 등에 연이어 제수되었다. 저서로는 『지족당문집(知足堂文集)』 3책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지족당문집(知足堂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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