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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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조선 후기에, 입직수호생, 주학교수, 덕천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성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대화(大化)
  • 성암(誠菴)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899년(고종 3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주학교수|덕천군수
  • 출생 연도1835년(현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조 (경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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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입직수호생, 주학교수, 덕천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성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대화(大化), 호는 성암(誠菴). 아버지는 박도정(朴道精)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경학(經學) 연구에 전심하는 한편,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종 때 판서 남정철(南廷哲)이 기자묘수호소(箕子墓守護所)를 설치하여 도내에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인사를 뽑을 때, 입직수호생(入直守護生)과 주학교수(州學敎授)로 임명되자 사퇴하였다가 주위의 권유로 보름 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뒤에 덕천군수를 지냈다. 관서지방에서 당시 으뜸가는 학자라고 찬양을 받았다. 저서로는『성암집(誠菴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성암집(誠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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