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정랑, 대사간,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병조좌랑·수찬을 지냈고, 1553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뒤에 해남현감(海南縣監)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삭탈관직을 당했다가, 2년 뒤 다시 기용되어 지평(持平)을 거쳐 홍문관교리에 지제교(知製敎)를 겸하였다.
그 뒤 의정부검상(議政府檢詳)과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종경청도감(鍾磬廳都監)을 거쳐, 사인(舍人)·장령·예문관응교를 지냈다.
1554년 공조참의에 승진되고, 곧이어 동부승지·대사간을 지내고,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삭탈관직되었다.
10년 뒤 다시 기용되어 상주목사(尙州牧使)가 되었으나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충주목사로 옮겼다. 1570년(선조 3) 다시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고, 그 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서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가 되었다. 그 뒤 우부승지·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1575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돌아와서 한성우윤을 지내고 동지경연(同知經筵)에 오위도총부부총관을 겸하였다.
그 뒤 형조참판을 거쳐 다시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동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일에 연루되어 하옥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584년 복직되어 상호군·동지첨지부사 등을 지냈다.
서경덕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전공했고 역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불의에 굽히지 않는 기질 때문에 이기(李芑)와 윤원형(尹元衡) 등의 미움을 사서 여러 번 배척을 당하였다.
변방의 수령이 되었을 때 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낡은 병기를 보수하고 군대를 조련(調鍊)하는 등 무비에 힘썼다. 저서로는 『슬한재집(瑟僩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