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 )

불교
유적
국가유산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사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보은 법주사(報恩 法住寺)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2009년 12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1-1번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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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사찰.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2009년 12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역사적 변천
  1. 창건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그 뒤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을 법주사라 한 것은 창건주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다.

그러나 이 절은 진표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이 됨으로써 대찰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즉,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한 진표는 제자 영심(永深) 등에게 속리산으로 들어가서 길상초(吉祥草)가 난 곳을 택하여 가람을 이룩하고 교법을 펴라고 하였다. 이에 영심 등은 속리산으로 들어가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길상사(吉祥寺)라 하였다. 그 뒤 1101년(숙종 6)에는 숙종이 그의 아우 대각국사(大覺國師)를 위하여 인왕경회(仁王經會)를 이 절에서 베풀었는데 당시 3만 명의 승려들이 모였다.

1281년(충렬왕 7) 왕이 절에 행차하여 산호전(珊瑚殿)에 배향하였고, 뒤이어 충숙왕도 절을 다녀갔다.

1363년(공민왕 12) 왕이 절에 들렀다가 통도사(通度寺)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가 상환암(上歡庵)에서 기도하였고, 세조는 병을 요양하기 위하여 복천암(福泉庵)에 와서 3일 동안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1. 중창

신라 영심의 중창 이래 이 절은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 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1605년(선조 38)부터 1626년(인조 4)에 걸쳐 유정(惟政)이 팔상전을 중건하였다. 1624년(인조 2)에도 벽암(碧巖)이 중창하였으며, 그 뒤 수차례의 중건 · 중수를 거쳤다.

1851년(철종 2) 영의정 권돈인(權敦仁)의 주선으로 국가적 규모의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1872년(고종 9) 지금의 청동대불 자리에 있었던 2층의 용화보전이 헐렸다. 1967년 태전(太田)이 중수하였으며, 1974년 정부의 지원으로 대대적 중수가 있었다. 그 뒤 1990년 청동미륵상을 중수하고 그 좌대 아래 지하에 성보전시관인 용화전을 지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용
  1. 당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 · 팔상전(捌相殿) · 명부전(冥府殿) · 원통보전(圓通寶殿) · 약사전(藥師殿) · 천왕문(天王門) · 금강문(金剛門) · 능인전(能仁殿) · 진영각(眞影閣) · 사리각(舍利閣) · 염화실(拈華室) · 삼성각(三聖閣) · 응향각(凝香閣) · 진해당(振海堂) · 궁현당(窮玄堂) · 명월료 · 정제당 등이 있다.

① 대웅보전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4년(인조 2)에 벽암이 중창할 때 건립한 것으로, 총 120칸에 건평이 170평, 높이가 61척에 달하는 대규모의 건물이다.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다포식(多包式) 중층건물로서 무량사(無量寺)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佛殿)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내부에 모셔진 삼존불은 벽암이 중창할 때 조성한 것으로 중앙에는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좌측에 보신(報身)인 노사나불(盧舍那佛), 우측에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각각의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만도 3.9m에 이른다.

② 팔상전

1962년 국보로 지정된 팔상전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때 의신이 세웠고, 776년에 병진(秉眞)이 중창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에 재건하였다.

내부에는 8폭의 팔상탱화(八相幀怜) 앞쪽으로 나한상(羅漢像)을 3열로 배치하고, 중앙에는 본존불을 봉안하였다.

③ 능인전

능인전은 사리탑의 계단을 오르는 곳에 위치한 아담한 전각으로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500나한을 안치하였다. 이 전각은 1624년에 벽암이 중창한 건물로서 건평이 16평이다.

④ 원통보전

원통보전은 정방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갖춘 건물로서 의신(義信)이 창건하고 진표가 중창하였으며, 벽암이 1624년에 삼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에는 높이 2.8m, 허리둘레 1.9m의 관세음보살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머리에는 수려한 보관을 쓰고 얼굴에는 옅은 미소를 담고 있는 거대한 목상(木像)이다. 원통보전은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⑤ 일주문과 금강문

일주문은 정면 1칸의 건물로서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는 현판이 있다. 금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내부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사자를 타고 앉은 문수보살(文殊菩薩), 코끼리를 타고 앉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안치하였다. 천왕문은 국내의 천왕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서, 1624년 벽암이 중창하였고 1974년에 새롭게 단청하였다.

⑥ 진영각과 사리각

진영각은 이 절을 거쳐간 고승들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서, 일명 선희궁원당(宣喜宮願堂)이라고도 한다. 이 같은 이름이 붙은 까닭은 조선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었던 영빈 이씨(映嬪李氏)가 사용하던 원당(願堂)이었기 때문이다.

내부 중앙에 개산시조(開山始祖) 의신과 전법초조(傳法初祖) 태고화상(太古和尙)의 영정이 있고, 좌우로 이름을 알 수 없는 2인의 영정을 비롯하여 세홍(世弘) · 함월(函月) · 명찰(明察) · 정준(靜俊) · 장신(莊信) · 도홍(道弘) · 홍민(弘玟) · 지영(智榮) · 영린(玲璘) · 진하(震河) · 탄응(坦應) · 석상(石霜) · 금오(金烏) · 명일(冥一) · 보흔(普欣) · 충은(衝恩) · 법영(法英) 등 모두 24인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사리각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과 이 탑을 조성하게 된 연기(緣起)를 적은 세존사리비(世尊舍利碑)가 있다. 1650년(효종 1)에 건립한 세존사리비에는 이 사리탑이 1362년(공민왕 11)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공민왕이 이 절에 행차하였을 때 왕은 사신을 통도사로 보내 석존사리 1립(粒)을 옮겨오게 하여 봉안하였다고 한다.

⑦ 염화실과 응향각

염화실과 응향각은 대웅전 서쪽에 있는 일련의 건물로서, 모두 선원(禪院)에 부속된 것이다. 예전에는 대향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총지선원(總持禪院)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선원 위에 있는 염화실은 조실(祖室)이 기거하는 곳이며, 응향각은 노전(爐殿)이라는 직책을 맡은 승려가 거처하는 곳이다.

⑧ 용화보전

이 절에 있었던 유지(遺址)로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이 있다. 이 용화보전은 법주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중심 법당이었다. 용화보전은 산호전이라 불리었고 산호보광명전(珊瑚普光明殿)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산호전이라는 명칭은 이 전각의 후면 암석을 산호대라고 불렀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용화보전은 2층으로 되어 있었고, 크기는 35칸으로 대웅전 28칸보다 더 크고 웅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전각 안에는 금색의 장륙상(丈六像)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72년(고종 9)에 대원군이 경복궁 복원을 위한 당백전 주조의 명목으로 불상을 압수하라는 명을 내려 불상은 압수되고 용화보전은 헐리게 되었다.

현재에도 옛터에는 당시의 초석과 미륵삼존불의 좌대 3기가 있다. 이 용화보전 터에는 1964년 시멘트로 만든 미륵불입상이 조성되었으며, 1986년 이를 헐고 청동 160t을 들여서 1989년 사월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대불이 점안(點眼)되었다.

  1. 국가유산과 산내 암자

이 절의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문화유산)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보은 법주사 석련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과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상, 1985년 보물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신법 천문도 병풍, 1997년 보물로 지정된 법주사 괘불탱, 2004년 보물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 등이 있다.

197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세존사리탑을 비롯하여 197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사천왕문,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석조와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보은 법주사 자정국존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미륵대불 앞에 위치하는 석조희견보살입상은 향로를 머리에 이고 굳건히 서 있는데 향불을 머리에 이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진표나 영심 등이 대성(大聖)의 수기를 얻기 위하여 개인의 일신을 아끼지 않던 법상종 특유의 신앙형태를 조형적으로 나타낸 의미심장한 걸작이다. 즉, 부처님을 향한 믿음이 굳건하므로 머리의 뜨거움, 손의 뜨거움을 잊고 일심으로 향로를 받드는 모습이다.

또한 자정국존비는 1314년(충숙왕 1)에 세운 것이며, 절에 이르는 길가에는 세조의 어련(御輦)이 지나갈 때 길을 비켰다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이 있다.

현존하는 산내 암자로는 수정암(水晶庵) · 복천암(福泉庵) · 중사자암(中獅子庵) · 여적암(汝寂庵) · 탈골암(脫骨庵) · 상환암(上歡庵) · 상고암(上庫庵), 근래에 중건된 동암(東庵) 등이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법주사사적(法住寺事蹟)』
『전통사찰총서 11』충북의 전통사찰Ⅱ(사찰문화연구원, 1998)
『사지』(충청북도, 1982)
『한국의 사찰 5』법주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6)
집필자
장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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