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이다.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 우랑(又閬), 우염(又髥), 번상촌장(樊上村庄), 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이고,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1813년(순조 13)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사간원 헌납을 거쳐 이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뒤 1845년(헌종 11) 영의정에 올랐다. 1819년(순조 19)에는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1835년(헌종 1)에는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51년(철종 2) 철종의 증조할아버지인 진종(眞宗)을 추존할 때 주1례(祧遷禮)에 관한 주청을 올려 파직당했으며, 7월 강원도 낭천(狼川, 지금의 화천)으로 주2되었다가 10월 순흥으로 원천(遠竄)되었다. 1859년(철종 10) 연산(連山)으로 주3된 후 주4에서 77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대 문사 관료와 폭넓게 교유하여 고증학과 금석학을 연구하고 서화 제작 및 감상에 심취했다. 특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는 『완염합벽첩(阮髥合壁帖)』[모암문고], 「산수도합벽축」[고려미술관] 등에서도 확인된다.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는 권돈인의 화제와 김정희의 발문으로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