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세로 23㎝, 가로 69.2㎝. 종이 바탕에 수묵.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던 김정희가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北京)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에게 1844년(헌종 10)에 답례로 그려준 것이다.
김정희는 이 그림에서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발문(跋文)이 작가 자신의 글씨로 적혀 그림 끝에 붙어 있고, 그 뒤를 이어 이듬해 이 그림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그곳의 명사 16명에게 보이고 받은 찬시들이 길게 곁들여 있다.
그리고 뒷날 이 그림을 소장하였던 김준학(金準學)의 찬(贊)과 오세창(吳世昌) · 이시영(李始榮)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서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화면에는 오른쪽에 ‘歲寒圖(세한도)’라는 화제(畵題)와 ‘우선은 이에 감상하라. -완당(藕船是賞 阮堂)’이라는 관지(款識)를 쓰고 ‘正喜(정희)’와 ‘阮堂(완당)’이라는 도인(圖印)을 찍어 놓았다.
그림 자체는 단색조의 수묵, 그리고 마른 붓질과 필획의 감각만으로 이루어졌다. 끝으로 긴 화면에는 집 한 채와 그 좌우로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대칭을 이루며 지극히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텅 빈 여백으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요소들은 모두 문인화의 특징들로 직업화가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에 반발하는 작가의 의도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그리고 작가의 농축된 내면 세계에서 표출된 필선과 먹빛의 담백하면서도 고담한 분위기는 문기(文氣)를 비롯하여 문인화가 지향하던 사의(寫意)의 세계와 서화일치(書畵一致)의 극치를 보여 준다.
조선 말기를 풍미하였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집약된 경지와 함께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