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통일신라시대, 속리산에 길상사를 세워 진표의 점찰교법을 전승한 법상종의 승려.
#주요 활동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표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제자로 영심(永深), 보종(寶宗), 신방(信芳), 체진(體珍), 진해(珍海), 진선(眞善), 석충(釋忠) 등이 있다. 이들이 ‘모두 산문(山門)의 조사가 되었다’라는 기록에서 진표의 제자들이 펼친 교세가 제법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진표로부터 직접 불법을 전수받은 이는 영심이었다. 속리산에 있던 영심은 진표가 미륵보살의 수기(受記)를 받고 널리 계법(戒法)을 선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융종(融宗), 불타(佛陀) 등과 함께 진표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영심은 진표에게 용맹하게 참회(懺悔)하는 모습을 보이며 법을 구하였다. 진표는 이들의 이마에 물을 뿌리며[灌頂] 법을 전하고[傳法] 기별(記別)을 주었다.
이후 진표는 영심에게 미륵진성(彌勒眞性)의 제9간자(簡子)와 제8간자, 『공양차제비법(供養次第秘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2권을 주면서 속리산으로 돌아가 길상초(吉祥草)가 난 곳에 절을 세우기를 간곡히 부탁하였다. 진표의 법을 전수받은 영심은 속리산으로 돌아와 길상사(吉祥寺)라는 절을 세우고, 점찰법회를 열었다.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서는 길상사가 세워진 자리가 진표가 예전에 들렀다가 미리 표시해 둔 곳이라고 한다.
영심이 계승한 점찰법회는 9세기에도 지속되었다. 헌덕왕(재위 809∼826)의 아들인 심지(心地)는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는 중악(中岳)에 머물고 있었는데, 속리산에서 열리는 영심의 점찰법회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심지는 이 법회에서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예배하고 참회하였다. 그렇게 심지가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길상사의 함 속에 넣어둔 미륵의 손가락 뼈로 만든 간자 2개가 심지의 옷 속에 있었고, 심지가 이를 길상사에 돌려주어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결국 영심은 간자 2개를 심지에게 주었고, 심지는 이를 중악으로 가지고 와 동화사(桐華寺)를 세우고 첨당(籤堂)에 두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진표의 법이 영심을 거쳐 심지에게로 계승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전기에 진표가 출가한 금산사, 영심이 있었던 길상사, 심지가 세운 동화사는 진표계를 흡수한 유가업(瑜伽業) 즉 법상종(法相宗)의 사찰로 자리잡았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단행본
-
논문
-
인터넷 자료
-
기타 자료
-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