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주1이다. 창건에 관한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다. 「안심사고적연대표(安心寺古蹟年代表)」에 따르면 775년(혜공왕 11)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 후 평안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고 해서 안심사라 하였으며, 그 뒤 1325년(충숙왕 12)에 원명국사(元明國師)가 주2 한다.
1979년 대웅전을 해체 · 수리하면서 「충청좌도청주남령구룡산안심사중수기(忠淸左道淸州南嶺九龍山安心寺重修記)」가 발견되어 1606년(선조 39)에 주3이 밝혀져 안심사는 그 이전부터 있었음이 확인된다. 1613년(광해군 5)에 지금의 영산전인 비로전을 창건하였으며, 1626년(인조 4)에 송암(松庵)대사가 대웅전을 중창하였고, 그 뒤 19세기까지 중수가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영산전, 주4 2동이 있다. 이 중 보물로 지정된 청주 안심사 대웅전은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건립 연대는 미상이나 1626년 중창 이후 지속적으로 중수되었다. 1816년(순조 16) 중수 때 팔작지붕이 맞배지붕으로 개조되고 측면도 1칸 줄어들었다. 대웅전 내부에는 삼존불과 1652년(효종 3)에 제작된 국보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을 비롯하여 1885년(고종 22)에 만든 칠성탱(七星幀), 1891년에 제작한 후불탱화가 있다. 또 대웅전 지붕에는 청기와 1매가 있다.
영산전은 1613년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비로전이라 하였으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존사리탑과 세존사리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세존사리탑은 진표율사가 이 절의 창건 당시 직접 조각하여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901년에 세운 사리비에 의하면, 탑의 행방을 모르던 중 이 산중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이 1881년에 구천동으로 옮겨졌던 것을 1900년에 광우(廣祐) · 등원(等元)이 다시 이 절로 옮겨 왔다고 한다. 그밖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청주 안심사 법고(淸原 安心寺 法鼓)가 있으며, 1601년(선조 34년)에 제작되었다.
775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현존 당우 및 법고, 괘불탱 등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후기 사찰 건축과 불교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