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聖住寺)는 경상남도 창원시와 김해시 사이에 있는 불모산(佛母山)의 서북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성주사창건사적』(1746)에 따르면 흥덕왕(재위 826836) 때 무염화상이 신통력으로 왜구를 물리치자, 왕이 무염을 국사로 봉하고 절을 창건하였으며, 성인(聖人)이 머무는 절이란 뜻으로 성주사(聖住寺)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무염(無染, 800888)은 821년(헌덕왕 13)에 입당하여 845년(문성왕 7)에 귀국한 사실로 미루어, 이 창건 설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또한 이 절이 위치한 불모산의 유래와 함께 가야시대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왕비 허황옥 사이에 태어난 10명의 왕자 중 7명이 출가하여 불모산에서 수행하였다고 한다. 수로왕이 왕자들이 보고 싶어 이 절을 찾아와 마신 우물이 ‘어수각(御水閣)’이라고도 한다. 다만 수로왕 때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임진왜란 때 성주사가 전소된 뒤, 1604년(선조 37)에 진경대사(眞鏡大師)가 중건하였다. 『성주사창건사적』에 따르면 진경대사가 절을 다시 중창하려고 불이 난 옛 절터에 목재를 쌓아두었는데 곰들이 밤사이에 지금의 자리로 목재를 옮겨 놓아, 이를 부처님의 뜻으로 알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으며, 이에 ‘웅신사(熊神寺)’라 하였다고 한다. ‘곰절’이라고도 부른다.
2006년 지장전 불상을 주1 도금하는 과정에서 복장발의문이 발견되었다. 거기에 “강희(康熙) 20년(1681)에 지장보살상, 시왕상과 동자상 등이 조성되어 불모산 웅신사에 봉안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웅신사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창원 성주사 목조 석가여래삼불 좌상(昌原 聖住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에서도 발원문과 중수개금기가 나왔는데, 이에 의하면 1655년에 제작되었고 1702년에 개금불사하였다. 1655년 발원문에는 사찰명이 웅신사로 표기되어 있으나, 1702년에는 성주사로 적혀 있다. 한편 『일성록』 1788년(정조 12) 8월 18일 기사에 ‘웅신사’가 보인다.
성주사는 1681년(숙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친 뒤, 1817년(순조 17)에 부산 동래 범어사에 있던 등암(藤巖)이 이 절로 옮겨 주석하면서 중흥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주2을 크게 확장하며 대규모 불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성주사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삼성각, 지장전, 설법전, 종각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1655년 조성된 창원 성주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1729년에 제작된 창원 성주사 감로왕도(昌原 聖住寺 甘露王圖)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대웅전에 봉안된 창원 성주사 무염국사 진영(1876년), 창원 성주사 삼층석탑, 용화전에 모셔져 있는 창원 성주사 석조관음보살 입상, 지장전에 모셔진 창원 성주사 석조 지장시왕상(1681년), 영산전에 안치된 창원 성주사 석조 석가삼존십육나한상 등이 있다. 삼층석탑과 석조관음보살 입상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 외 경상남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된 것으로 1783년(정조 7)에 제작된 창원 성주사 동종과 1892년에 조성된 창원 성주사 신중도가 있다. 성주사 내 문화유산은 제작 연대가 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선 후기 불교미술 및 창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