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708년(성덕왕 7)에 창건되어 우적산(牛跡山) 일월사(日月寺)라 하였으며 영서지방의 명찰로 손꼽혀 오다가 1568년(선조 2)에 현위치로 이건(移建)하면서 수타사(水墮寺)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린 뒤 1636년(인조 14)에 공잠(工岑)이 중건하였고, 1644년에 학준(學俊)이 당우(堂宇)를 확장하였다. 1647년에는 계철(戒哲)과 승가(僧伽)가 승당(僧堂)을 새로 건립하였고, 1650년(효종 1)에는 도전(道佺)이 정문(正門)을 세웠으며, 1658년에는 승해(勝海)와 정명(正明)이 흥회루(興懷樓)를 세웠다.
1670년(현종 11)에는 정지(正持)와 정상(正尙)과 천읍(天揖)이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봉안하였고, 1674년에는 여담(汝湛) 등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
그 뒤에도 여민(汝敏) · 지해(智海) · 지행(智行) · 성민(性敏) · 찬징(贊澄) · 선찰(善察) · 성념(省念) · 찬원(贊源) · 상흘(尙吃) 등이 1683년(숙종 9)까지 계속하여 청련당(靑蓮堂) · 향적전(香積殿) · 백련당(白蓮堂) · 송월당(送月堂) 등의 당우들을 차례로 중건하여 옛모습을 재현하였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것은 1811년(순조 11)이다. 그 뒤에도 1861년(철종 12)에 윤치(潤治)가 중수하였고, 1878년(고종 15)에는 동선당(東禪堂)을 중건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다. 1976년 심우산방을 중수하였고, 1977년에는 삼성각을 지었으며, 1992년에는 관음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심으로 흥회루와 봉황문(鳳凰門, 또는 天王門)이 앞에 있으며, 좌측에 심우산방(尋牛山房, 또는 東別堂)이 있고 좌측에는 요사채가 배열되어 있다. 또한, 뒷편에는 삼성각(三聖閣)과 성황당이 있는데, 성황당이 있는 것은 특이하다.
이 중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다포집으로 1497년 공잠이 이건, 중창한 것이며,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1983년 보물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 제17권과 제18권이 보존되어 있고, 기단부와 옥개석만이 남아 있는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고려 말기의 수타사 삼층석탑이 있다.
또한, 이 절을 거쳐간 고승 중 청송당(靑松堂) · 기허당(騎虛堂) · 서곡(瑞谷) · 유화당(遊華堂) · 중봉당(中峯堂) · 홍파(洪波) · 홍우당(紅藕堂) 등의 부도가 있으며, 사리탑비(舍利塔碑)는 서곡의 것만 남아 있다.
총 2,999평의 대지에 171평의 건물을 갖춘 이 절은 풍수로 볼 때 공작포란지지(孔雀抱卵之地)라는 명당이며, 주위는 동용공작(東聳孔雀) · 서치우적(西馳牛迹) · 남횡비룡(南橫飛龍) · 북류용담(北流龍潭)으로 표현되는 포근한 골짜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