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주1한 독신출가자들이 모여 공동수행을 하는 공간을 ‘승가[僧伽, saṃgha]’라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교단(敎團), 대중(大衆), 종단(宗團), 종파(宗派) 등의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불교의 출가수행자들의 집단을 대표하는 표현은 승가이다.
그러나 불교에 ‘승가’라는 표현이 처음부터 정착되어 사용된 것은 아니다. 불교가 성립되던 시기에는 기존의 주2와 주3에 대립하던 수행자 집단이 다수 존재하였다. 그들은 바라문교의 주4나 주5 등의 전통적 사상을 전면으로 부정하였는데, 그 주된 이유는 인간의 삶을 주6에 의한 결정론으로 보았고, 또한 업[業, karma]이라는 특수한 힘으로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통제하는 모습에 큰 반발을 가졌다. 이러한 수행자 집단은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경험과 그의 행동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며, 업도 또한 그 사람이 어떠한 행동의 원인에 따라 그 결과가 발생한다고 여겼다. 이와 같은 사상을 가진 이들이 모여 기존의 통념과는 다르게 수행을 하는 혁신적인 집단으로 발전하였고, 이들은 당시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상가(saṃgha)와 가나(gaṅa)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곳의 수행자들을 바라문에 대립하는 종교인의 의미로서 ‘사문[沙門, sramaṇa]’이라 하였다.
불교도 처음에는 상가와 구나의 두 표현이 혼재되어 사용되었다. 『숫타니파다』나 『디가니까야』 등에서도 부처님을 ‘saṃghin[상가를 지닌 이]’나 ‘gaṇin[가나를 지닌 이]’라고 지칭하는데, 이와 동일한 표현이 『사문과경』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를 부를 때 사용된다.
이러한 승가의 성립 시기에 관해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는데, 그 중 부처님의 입멸을 나이 80세인 기원전 383년에 기준할 경우, 초전법륜(初轉法輪)이 35세인 기원전 428년에 이뤄지고 오비구가 부처님에게 귀의하였기에 최초 승가의 탄생을 이때로 보는 학설이 일반적이다.
불교에서는 공동체의 규율인 ‘율(律)’이 확립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상가라는 표현이 정착되어 사용된다. 이는 불교가 점차 승원화가 되고 규모가 증대함에 따라, 그 안에서 공통된 규율이 필요해졌고, 이때 그것을 일컫는 표현으로 ‘상가[=승가]’가 채택되어 사용된 것이다. 즉, 불교의 승가는 사문들의 수행공동체에서 승원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채택된 표현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특정 승원에 거주하는 승려의 조직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불교의 사문은 바라문교의 카스트를 전면으로 부정하였기에 신분이나 직업을 구별하지 않고 누구라도 마음만 있으면 승가에 출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며 여러 일들이 생겨났고, 그것들을 일일이 제지할 수 없었기에 승가의 규율인 율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가장 이른 시기의 규율은 특정한 조항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칠불통계(七佛通戒)’라고 하여 “모든 악을 그치고, 선한 일을 찾아 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청정케 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는 가르침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문들은 세속의 욕망을 등지고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해 출가한 이들이었으나, 사문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기에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서 칠불통계만으로는 그들을 전부 통제할 수 없었고, 매번 문제가 생겨날 때마다 부처는 두 번 다시 승가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규율을 제정하였는데, 이를 ‘해서는 안될 일을 범했을 때 그에 따라 제지하게 한다’는 의미로 ‘수범수제(随犯随制)’라고 부른다. 이렇게 수범수제로 만들어진 승가의 규율들은 출가자들에게 산재되어 전해지다가, 부처의 열반 후 열리게 된 제1 결집에서 우파리[優波離, upali] 존자에 의해 결집되어 주7’이라는 성전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승가의 운영 규칙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즉, 승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율장이 있다는 의미이고, 이 율장을 구족계(具足戒)라고 하여, 불교의 출가자인 비구, 비구니가 정식출가자로 승인될 때 이것을 받게 된다. 그래서 현재는 주8 이후 율장도 6개로 나뉘어 전해지게 되었지만, 모든 승가는 율장에 의해 출가자를 배출하고, 그 출가자들이 모여 수행하는 공간이 승가가 되는 것이다.
앞선 설명과 같이 불교의 승가에는 누구라도 출가할 수 있다. 물론 출가자의 기본 자격을 확인하는 10차(遮) 13난(難)이라는 점검 조항이 있으나, 이는 그저 출가에 있어 하나의 절차에 지나지 않았기에 사실상 대부분의 지원자가 출가할 수 있었다. 이에 수범수제의 규율과 함께 승가의 생활원칙도 제정되었는데, 모든 출가자들은 ‘삼의일발(三衣一鉢)’을 지니고 ‘사의(四依)’를 지키며 생활해야 했다.
‘삼의일발’은 출가자가 일생동안 지녀야 하는 생활물품이며 소유의 범위이다. 여기서 삼의란 일상생활과 수행, 법회 등에 사용되는 세 종류의 옷을 말한다. 첫 번째 안타회[安陀會, antarvāsa]는 속옷의 역할을 하는 옷으로 모든 일상에서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이다. 두 번째 울타라승[鬱多羅僧, uttarāsaṅga]은 일종의 겉옷으로 승가에서의 의식과 수행에 착용을 하는 옷이다. 세 번째 승가리[僧伽梨, saṃghāṭī]는 법회나 탁발과 같은 중요한 의식을 행할 때 울타라승을 입은 상태에서 왼쪽 어깨에 걸치는 옷으로 현재의 승려들의 가사(袈裟)와 같은 역할을 하는 복식이다. 이러한 삼의는 출가자들로 하여금 옷은 신체를 보호하고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용도만으로 삼게 하고, 그를 통해 사치나 풍족함을 누릴 수 없도록 제정한 생활 원칙이다.
일발은 하나의 주9로써 승가의 식생활인 탁발을 하기 위한 도구이다. 출가자는 재물의 축적과 집착을 없애기 위해 생산 활동과 저장을 금지시키고 있는데 식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음식을 만들거나 보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출가를 하면 화상(和尙)으로부터 발우를 받아 일생 동안 탁발로 음식을 얻고 정오 전에 식사를 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는 음식에 대한 집착과 만족을 버리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도록 제정한 생활 원칙이다.
다음으로 사의는 승가의 출가자가 지켜야 할 의식주 전반의 네 가지 원칙으로 걸식[乞食, paiṇḍapātika], 분소의[糞掃衣, pāṃsukūla], 수하좌[樹下坐, niṣaṇṇā vṛkṣatalaṃmi], 진기약[陳棄藥, pūtimuktabhaiṣajya]을 말한다. 사의는 승가의 모든 출가자들이 생활의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기에 수계를 할 때 이에 따라 살아갈 것을 서약한다. 첫 번째 걸식[탁발]은 앞의 일발과 같은 의미로 출가자가 좋은 음식과 배부름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이기에 걸식을 통해 음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수행을 위한 약으로 삼아 정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 분소의도 앞의 삼의와 같은 의미로 출가자가 의복으로 안락함을 받고 그에 대한 소유욕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한 규범이다. 특히 분소의는 부처가 출가할 때 시체를 감쌌던 낡은 천을 옷으로 삼아 정진하셨던 모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불교의 출가자를 상징하는 모습 중의 하나이다.
세 번째 수하좌는 생활의 거처인 집과 터전에 대한 집착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한 원칙이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터전을 마련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출가자는 세속적 삶을 떠나 구도의 길에 들어선 존재이기에 그러한 터전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정주하여 안락함을 누리는 생활을 금하고자 나무 아래에서 잠시 머문다는 의미에서 수하좌라는 원칙을 둔 것이다.
네 번째 진기약은 소의 오줌을 발효해서 만든 일종의 약으로 출가자는 삶과 죽음에 집착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기에 건강과 장수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진기약이라는 규범을 두어 최소한의 의약품만으로 생활함으로써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삼의일발과 사의는 어디까지나 승가의 생활원칙이지 철칙이었던 것은 아니다. 불교의 수행은 중도(中道)를 추구하기에 어느 한 쪽의 모습에 기울어진다거나 지나친 고행을 수행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이에 부처님 당시에도 ‘정법[淨法, kappa]’이라는 방편을 두어 지나친 고행을 피하고 지역과 환경을 고려하여 출가자들이 승가에서 원만한 수행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제1결집에서 부파불교에 이르는 시기까지 승가는 정식출가자인 비구, 비구니만을 포함하였고, 이에 비구승가, 비구니승가라고 불렸다. 그러나 불교의 교단이 점차 거대해지고 출가자의 종류도 비구, 비구니 이외에 예비출가자인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가 생겨나고, 불교에 귀의한 재가자들도 늘어나며 승가는 보다 넓은 의미의 불교 교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들을 전부 포함하여 불교 교단의 구성원을 주10, 주11으로 부르게 된다. 그러나 이때 사용되는 ‘중’은 승가(saṅgha)가 아닌 ‘pariṣad, parisā’를 어원으로 하며, 무리생활을 한다는 의미에서 한역으로 ‘대중(大衆)’이라 한다. 현재 불교 교단의 구성원을 통칭하여 부르는 사부대중[사중]은 본래 승가의 구성원이었던 비구, 비구니에 재가자인 주12, 주13를 포함시킨 것으로 정확하게는 이 사부대중이 승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승가를 보다 확장하여 불교에 귀의한 출가자와 재가자를 전부 통칭하여 부르는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칠중은 이 사부대중에 예비출가자인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까지 포함한 것으로 이 예비출가자라는 개념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구족계를 받기 전의 출가자이기에 이처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구족계를 수계하게 되면 승가의 일원이 되기에 칠중에 포함하는 것이다.
승가의 구성원은 생산활동과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율장에 그렇게 제지하고 있기에 승가의 출가자는 반드시 자신의 발우로 걸식[탁발]을 하여 음식을 구해 식사를 해야 했다. 이에 오전의 식사 때가 되면 반드시 승가에서 발우를 들고 나와 마을로 나갔으며, 마을의 여러 집을 돌며 재가자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다시 승가로 돌아와 모든 구성원들과 나누어 평등하게 식사를 해야 한다. 이 식사의 과정을 불교에서는 중요한 수행으로 삼는데 단순히 음식을 구하기 위해 재가자의 마을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승가가 고립된 곳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고 있고, 그 속에서 출가자와 재가자가 서로를 공경하고 화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이 걸식[탁발]이다. 그리고 한 명의 출가자가 받아온 공양물[음식]을 그 사람만이 먹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모아 모든 승가의 출가자가 출가한 승랍(僧臘)에 따라 앉아 똑같이 식사를 해야 한다. 이는 승가의 탄생 배경이었던 바라문교와 베다와 달리 승가의 모든 출가자는 어떠한 신분이나 인종 등에도 차별받지 않고 똑같은 존재로서 승가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승가는 모든 출가자의 평등한 수행과 생활 영위를 위하여 필연적으로 율장이라는 규율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 율장에 나온 내용을 지키며 승가에서 살아간다면 모두가 평등하고 원만하게 수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칠불통계와 마찬가지로 율장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한계를 드러내며 또 다른 문제를 겪게 된다. 이전에는 승가의 통제가 문제였으나, 이번에는 율장에 따른 생활이 문제가 되어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 율장에서는 ‘파승(破僧)’이라는 건도를 두어 기록하고 있다. 파승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는데, 그중 최초의 파승은 부처님 당시의 규율에 대한 부정에 의한 것이었다. 이를 데바닷타의 주14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제자인 데바닷다는 사의를 생활의 원칙이 아닌 철칙으로 적용해야 하며, 정법(淨法)과 같은 예외를 없애고 모든 수행자들이 주15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파승을 일으켰다.
그러나 데바닷타의 오사에 대해 부처는 고행과 같은 엄격한 생활양식을 실천하고 싶은 자는 그리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완화된 생활양식에 따라도 좋다는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 이에 부처의 답변을 인정할 수 없었던 데바닷타가 일부의 출가자를 데리고 나가 자신만의 교단을 만들어 파승을 일으킨 것이다. 이는 아직 제1결집으로 율장이 생겨나기 전 부처의 생전에 생긴 최초의 파승으로서, 부처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승가 내에서 규율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으며 그로 인해 화합승가를 분열시킨 일이 있었던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승가가 보다 원활하게 유지되고 그 안에서 모든 출가자들이 수행에만 집중하여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율장이 오히려 승가를 어지럽게 만들고 다툼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파승은 이후의 승가의 역사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고, 이후 다시금 율장에 의해 생겨나는 부파분열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후 승가에서 율장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고, 승가의 존속에 율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가 출가자들 사이에 대두되었고, 현재까지도 율장에 따라 출가자를 배출하고 승가를 운영하는 원칙으로 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