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31본산이 정해진 때에는 패엽사(貝葉寺)의 산내 말사였다. 846년(문성왕 8)에 창건되었고 조선 초기에 중건되었다. 그 뒤 1650년(효종 1)에서 1871년(고종 8)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다.
사역은 북한 국보유적 제7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과 명부전·수월당·만세루·재실·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십대왕(十大王)을 모신 명부전이 특히 유명하다. 명부전의 내부에는 다른 절과는 달리 2좌의 금동불을 봉안하고 있는데, 원래 이 불상은 산너머에 있던 흥률사(興律寺)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흥률사의 승려와 아랫마을의 광주김씨 장사가(壯士家)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절이 폐파될 때, 한 도승이 장사들과 싸우면서 불상을 양 옆에 끼고 넘어와 이곳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절 주위에는 남암(南庵)·오진암(悟眞庵)·달마암(達磨庵)·묘각암(妙覺庵) 등의 암자들이 있다.
절 뒤의 아사봉은 아사달산(阿斯達山)이라고도 하는데, 그 꼭대기 암벽 위에는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전하는 말로는 단군이 이 아사봉 위에서 승천하였다고 하는데, 단군이 당장경(唐藏京)으로 도읍을 옮겼다가 아사달로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다는 곳이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