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각성은 조선시대 판선교도총섭, 팔도도총섭, 규정도총섭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자는 징원(澄圓)이고 호는 벽암(碧巖)이며 각성은 법명이다. 10세에 출가하여, 부휴의 제자가 되어 속리산, 금강산 등에서 정진하였다. 임진왜란 때 해전에 참여하였다. 1624년 팔도도총섭이 되어 남한산성을 완성하였다. 1646년 화엄사에서 86세로 입적하였다. 선과 교에 모두 뛰어나 정혜쌍수와 교관겸수를 실천하였고, 화엄 등 교학에도 정통하였다. 저서로는 『선원집도중결의』, 『간화결의』, 『석문상의초』가 있다.
정의
조선시대 때, 판선교도총섭, 팔도도총섭, 규정도총섭 등을 역임한 승려.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1624년 조정에서 남한산성을 쌓을 때 팔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시키자,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라는 직함과 함께 의발을 하사받았다. 1632년 구례 화엄사를 중수하여 대총림으로 만들었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승군 3,000명을 모아서 항마군이라 이름 짓고, 호남의 관군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향하다가 인조의 항복 소식에 통곡하며 돌아왔다. 전쟁이 끝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도중결의(圖中決疑)』와 『참상선지(參商禪旨)』 등을 저술하였다.
1640년 봄 쌍계사(雙磎寺)를 중수하였고, 그 해 8월에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원두표(元斗杓)의 청으로 규정도총섭(糾正都摠攝) 직을 맡아서 무주 적상산성(赤裳山城)에 있는 사고를 보호하였다. 1641년(인조 19) 백운산 상선암(上仙庵)에 머물렀으며, 1642년 조정에서 천거하여 일본행 사신으로 삼았는데, 선사는 서울로 가다가 노환으로 되돌아왔다. 한편 효종이 즉위하기 전에 안주(安州)에서 만나 화엄(華嚴)의 종지(宗旨)를 물어서 답한 적도 있다. 1646년 희언(熙彦)과 속리산 보은 법주사에 은거하다가 화엄사에서 입적하였다. 나이 86세, 법랍 73세였다.
학문세계와 사상
참고문헌
- 『한국고승비문총집-조선조·근현대』(이지관,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0)
- 『한국불교사상사(韓國佛敎思想史)』(숭산박길진박사화갑기념사업회, 원불교사상연구원, 1975)
-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금명보정, 필사본, 1930)
- 『이조불교(李朝佛敎)』(고교형, 보문관, 1929)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