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재등용되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명으로 3궁(宮)을 호위(扈衛)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세자를 모시고 전주로 피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호종하여 끝까지 성을 지켜 청군과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주화파(主和派) 대신들이 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자고 하자, 칼을 뽑아 대신들을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호종의 공으로 재상과 같은 예우를 받고, 1638년에는 오위도총부도총관을 제수했으나 사퇴하였다. 화의가 성립된 뒤 삼전도비사자관(三田渡碑寫字官)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부, 사퇴하였다.
1642년 명나라와 밀무역을 하다 청나라로 잡혀간 선천부사 이계(李烓)가 조선이 명나라를 지지하고 청나라를 배척한다고 고하여, 최명길(崔鳴吉)·김상헌(金尙憲)·이경여(李敬輿) 등과 함께 심양(瀋陽)에 붙잡혀가 억류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주선으로 풀려나와 귀국한 뒤 시·서로써 세월을 보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술활동
글씨로는 회양의 「청허당휴정대사비(淸虛堂休靜大師碑)」, 광주(廣州)의 「영창대군의비(永昌大君碑)」, 파주의 「율곡이이비(栗谷李珥碑)」 등이 있다.
저서로는 『낙전당집樂全堂集)』·『낙전당귀전록(樂全堂歸田錄)』·『청백당일기(靑白堂日記)』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청음집(淸陰集)』(김상헌)
- 『택당집(澤堂集)』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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