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승문원정자, 예문관검열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항쟁한 문신·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해 10월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고, 11월 사국(史局)에서 사초(史草)를 태운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 예안(禮安)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안동·군위 등지에서 분전하였다.
이듬해 3월 좌도병마사 권응수(權應銖)와 합세하여 상주 당교(唐橋)의 적을 쳐서 큰 전과를 거두고, 4월 서울에서 부산으로 철수하는 적을 차단, 공격하여 대승하였으며, 5월에는 양산을 거쳐 경주에서 이광휘(李光輝)와 합세하여 싸우다가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1595년 홍문관수찬이 증직되고, 1893년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근시재집(近始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갈암집(葛庵集)』
- 『근시재집(近始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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