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약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통영군관, 훈련원첨정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27년(인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창성부첨절제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석희 (부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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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통영군관, 훈련원첨정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며, 형은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6년(선조 29) 괴산(槐山) 선봉장으로 창의, 모병한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관찰사의 천거로 별장에 발탁되었다. 이듬해 정유재란 때에는 통영군관(統營軍官)으로 관군과 의병을 통솔하여 창원 · 옥포 등지에서 왜군 24명을 죽이는 군공을 세웠다.

난이 끝난 뒤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으로 승진되었으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뒤에 창성부첨절제사(昌城府僉節制使)로 나갔다가 1627년 정묘호란을 당하여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순절하였다. 1683년(숙종 9) 국가에서 향리에 정문을 세우게 하고 병조참판을 추증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선무원종공신록권(宣武原從功臣錄券)』

주석

  • 주1

    : 순절의 전말 : 『인조실록』 16권, 1627년(인조 5) 4월 1일. "명나라에 후금과 화친하기까지의 사정을 아뢰다"

  • 주2

    : 참판 추증 : 『숙종실록』 21권, 1689년(숙종 15) 10월 10일. "서견 김시약 이사룡을 포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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