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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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적상산성
무주 적상산성
건축
유적
국가유산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에 있는 고려후기 에 축조된 대표적인 방어 성곽. 산성.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무주 적상산성(茂朱 赤裳山城)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5년 07월 10일 지정)
소재지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산11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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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에 있는 고려후기 에 축조된 대표적인 방어 성곽. 산성.
내용

196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214,975㎡, 둘레 8,134m. 현재 북문지 · 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實錄殿)이, 1614년에 사각(史閣)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璿源閣) · 군기고(軍器庫) · 대별관(大別館)이 1643년호국사(護國寺)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 · 참봉 · 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상산(裳山)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崔塋)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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