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성 ()

목차
관련 정보
연기 금이성 성벽
연기 금이성 성벽
건축
유적
문화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이칭
이칭
운주산남성(雲住山南城), 금성산성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금이성(金伊城)
지정기관
세종특별자치시
종목
세종특별자치시 시도기념물(2012년 12월 31일 지정)
소재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산86번지 외 2필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내용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연기군 전의면에서 공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약 4㎞ 정도 남쪽으로 가면 달전리 부락에 이르게 된다. 이 부락의 동쪽 표고 424m의 금성산에 둘레 약 500m 정도로 축조된 석축산성이다.

성의 전체적인 평면은 말각방형(抹角方形)이며, 정상부의 외측은 내외협축으로 축조하고 있으며, 석재는 자연할석을 이용하고 있다.

문지는 2개소가 확인되었는데, 가장 잘 남아 있는 북문지는 너비 5m 정도이며, 성안의 물은 동쪽 성벽이 통과하는 작은 골짜기로 모이게 되어 있어 이곳에 수구지와 문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백제시대 토기편과 와편이며, 와편은 격자문과 어골문이 많이 출토될 뿐이다.

산성의 동북방에는 운주산성(雲住山城)이 있고, 북으로는 고려산성·증산성·전의읍내리산성·이성산성이 거의 일직선으로 바라다 보이며, 산성 아래에는 전의에서 공주로 통하는 큰 길이 통과하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이성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데, 금성산에 산성이 있어 금이성이라고 한다라고 하고, 『대동지지』에는 운주산남성(雲住山南城)이라고 하고 속칭 금성산성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성의 둘레는 다 같이 1,528척이라고 하였으며 샘도 한곳이 있었으나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91)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