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00년 9월 28일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산내암자(山內庵子)이다.
창건연대 및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왕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우게 하였다.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614년에 혜구대사(慧球大師)가 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기 위하여 영당(影堂)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00여 평에 달하는 인법당(因法堂)을 비롯하여 영자각(影子閣) · 요사채 등이 있다. 인법당에는 「홍제암(弘濟庵)」 편액이 걸려 있는데, 200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법당 내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 및 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영자각에는 16명의 고승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이 영자각은 영조 때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표충사(表忠祠)라고 했으나 밀양의 표충사에도 사명대사를 모신 곳이 있다고 하여 이곳을 폐하였다고 한다.
현재 영자각에는 청허(淸虛) · 사명 · 영규(靈圭) · 하운(夏雲) · 화곡(華谷) · 장섭(仗涉) · 송파(松坡) · 평신(平信) · 정월(淨月) · 부환(賦還) · 보응(普應) · 돈암(遯庵) · 모은(慕隱) · 예봉(禮峰) · 회은(晦隱) · 해활(海活) 등의 영정이 있다. 또한 이 암자에는 1612년(광해군 4)에 허균(許筠)이 비문을 쓴 사명대사의 비가 있다. 이 비는 1943년 일본인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비문의 내용이 한국인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네 조각을 내어 길가에 방치하였다.
광복 후 이 비문을 명월당(明月堂)에 보관했다가 1958년에 철봉으로 속을 연결하고 파손된 부분을 석회로 때워서 현재의 위치에 세웠으며, 사명대사탑과 함께 200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1m, 너비 1.2m이며, 사명대사의 전기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것이다. 또 암자 뒷산에는 높이 1.8m, 둘레 3.32m의 평범한 석종형(石鐘形) 부도가 있는데, 사명대사의 부도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