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원평부원군(原平府院君)
  • 자건(子建)
  • 시호충익(忠翼)
  • 탄수(灘叟), 탄옹(灘翁)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
  • 본관원주(原州)
  • 사망 연도1664년(현종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의정|좌의정
  • 출생 연도1593년(선조 26)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유한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10월 15일
탄수실기 미디어 정보

탄수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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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건(子建), 호는 탄수(灘叟) · 탄옹(灘翁). 첨지중추부사 원송수(元松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수군절도사 원호(元豪)이며,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원유남(元𥙿男)이다. 박지계(朴知誡)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광해군의 정치가 점점 문란해지자 의사(義士)들과 인조반정 모의에 협찬하였고, 반정이 성공한 뒤에는 그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원평부원군(原平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전주부윤이 되고, 나주목사를 거쳐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 당시, 어영부사로서 남한산성을 지켰다. 1642년 형조판서로 승진되었으며, 뒤이어 강화부유수 ·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 동안에 서인 중 공서(功西)에 속하여 청서(淸西)를 탄압하다가, 같은 파에 속한 김자점(金自點)과의 정권다툼으로 분당하여 원당(原黨)의 영수가 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년) 호조판서로서 한때 파직당하였고, 1651년에는 좌참찬 · 좌찬성을 지냈다. 1654년 병조판서가 되어 김육(金堉)이 적극 추진하려는 대동법(大同法)의 실시를 반대하였지만, 동전(銅錢) 유통에는 동의하여 보급 방법 등을 논의하는 데 참여하였다.

1656년 우의정을 거쳐 1662년에는 좌의정에 올라 내의원과 군기시의 도제조(都提調)를 겸직하였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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