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건옹(健翁)
  • 원회(元會)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840년(헌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헌|이조판서
  • 출생 연도1776년(영조 5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유한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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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원회(元會), 호는 건옹(健翁). 할아버지는 김교행(金敎行)이고, 아버지는 김이인(金履仁)이며, 어머니는 송정흠(宋鼎欽)의 딸이다. 군수 김이례(金履禮)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3년(순조 3) 사마시를 거쳐, 180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그 뒤 대교(待敎) · 학정(學正) · 사경(司經)을 지냈다.

1815년에 실시한 홍문록(弘文錄)에 4점, 이어 실시한 도당록(都堂錄)에 4점을 받고 수찬(修撰)에 임명되고, 이듬해 교리(校理)가 되었다. 1822년 대사성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가자(加資)되었다. 1825년 이조참판에 올랐고, 1827년 대사헌에, 1833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헌종이 즉위한 뒤 1838년(헌종 4)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1840년 모역혐의를 받고 투옥되어 국문(鞫問: 신문)을 받던 중 심한 고문에 불복하다가 죽었다. 편서로 『탄옹행장(炭翁行狀)』이 있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숭정3계해춘대전중궁전진후평복합2경경과별시증광사마방목(崇禎三癸亥春大殿中宮殿疹候平復合二慶慶科別試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74])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3

    : 심문 중 사망 : 『헌종실록』 7권, 1840년(헌종 6) 8월 27일. "국청 죄인 김양순이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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