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되었을 때 얻은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단어의 뜻 그대로 풀면, '더 이상의 위가 없는 적절하고도 동등한 깨달음'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 표기하면 '무상정등각'이 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사문 고타마 주1가 수행을 한 끝에 얻게된 깨달음을 가리킨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하여 사문의 여러 수행을 하던 중 주2을 포기하고 네란자라강으로 내려와 소녀 수자타의 주3 공양을 받은 뒤, 핍팔라 나무[훗날 주4] 아래에서 깨달음의 주5을 세우고 정진한 끝에 마왕 주6의 조복을 받고 얻게된 깨달음을 가리키는 것이니, 즉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음을 지칭한다.
한자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주7의 음사로써, 원어는 'an[부정] uttarā[위]+samyak[적절한] saṁ[동등한] bodhi[깨달음]'이다. 각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더 이상의 위가 없는 적절하고도 동등한 깨달음'이라는 의미로, 이 의미를 한자로 표기하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 된다.
그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마지막 글자인 bodhi[깨달음]에서 알 수 있듯이 깨달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문 고타마 시절 만나게 된 두 수행자인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뿟다로부터 각각 배운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모두 익힌 사문 고타마가 이 선정 수행을 포기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두 선정 수행은 당시 인도 주8에서도 무색계 주9 중 가장 높은 두 단계으로 불리던 선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선정일지라도 그 단계에 들어가는 입정과, 수행을 마치고 나오는 출정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수행이라고 사문 고타마는 판단했다. 즉, 아무리 뛰어난 수행이나 선정일지라도 그것에서 나와 다시금 일상에서 지내게 되면 수행의 법이 아닌 일상의 업에 지배되기에 그러한 선정으로는 완전한 열반에 들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사문 고타마는 자신이 어린 시절 농경제에서 처음 경험한 호흡을 바탕으로 하는 수행을 토대로 모든 삶 그 자체가 수행이며 깨달음일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법을 추구하였고, 그 끝에 체득한 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그래서 이 표현은 선정도 삼매도 아니며, 어떤 특수한 법이나 수행법을 나타내는 것도 아닌 그 자체로 깨달음[bodhi]으로써 표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