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분율육권초기(四分律六卷抄記)』의 저자 지인(智仁)은 649년(진덕여왕 3) 당에서, 당의 고승으로 법상종(法相宗)의 개조라고 불리는 현장(玄奬, 주1이 『반야심경(般若心經)』 1권과 『인명정리문론본(因明正理門論本)』 1권을 역경장(譯經場)에서 주2하였을 때 현장의 주3가 되어 함께 역경(譯經)의 대업을 진행하였다고 전해진다.
지인의 저서라고 전해지는 저술은 『십일면경소(十一面經疏)』 1권과 『사분율육권초기』 10권, 『불지론소(佛地論疏)』 4권, 『현양론소(顯揚論疏)』 10권, 『잡집론소(雜集論疏)』 5권 등이 있으나, 이는 기록만으로 전해지고 현존하는 것은 없다. 승려 지인에 대해 전해지는 기록도 남아있지 않기에 지인이라는 승려가 정확히 어떤 인물이며, 어떠한 형식으로 각 저술들을 주석하였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다만,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 몇몇의 주석서에서 ‘ 신라 지인(新羅智仁)’이라고 적고 있는 것을 토대로 하여, 그가 신라의 승려[新羅僧]였다는 것을 유추함으로써 그의 존재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지인이라는 승려의 기록에 대해 『동역전등록(東域傳燈錄)』의 「전율록(傳律錄)」 제2에서 등장하는 제목에 따르면, ‘지인(智仁)’이라고 알려진 그의 이름이 ‘지인(智忍)’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존재하기에 '지인'이라는 신라의 승려에 대한 보다 정확한 학술 조사도 필요한 실정이다.
『사분율육권초기(四分律六卷抄記)』의 토대가 되는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6권본은 일반적으로 줄여서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라고 불리는데, 이 주석서는 주4의 도선(道宣, 주5이 당나라 당시에 유통되던 율장인 『사분율(四分律)』에 대해 주석한 것이다. 도선은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 대한 주석을 여러 권 하였는데, 그 권 수에 따라 3권본, 6권본, 12권본의 3종류가 존재한다. 이 중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의 6권본만을 따로 분류하여 『사분율육권초(四分律六卷抄)』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분율육권초(四分律六卷抄)』를 신라의 승려인 지인이 다시금 10권의 분량으로 풀이하여 주석한 것이 『사분율육권초기(四分律六卷抄記)』 10권이라 불리는 저술이다.
『사분율육권초』의 주석서인 『사분율육권초기』가 갖는 특별한 의의는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유일한 『사분율육권초(四分律六卷抄)』의 주석서라는 점이다. 그리고 도선이 『사분율육권초(四分律六卷抄)』를 저작한 이후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주석서 중 하나라고도 불리지만, 현재는 아쉽게도 저자인 지인에 대한 기록를 비롯하여 그의 저술이라 불리는 모든 저서가 산실되어 전해지지 않기에 『사분율육권초기(四分律六卷抄記)』에 관한 내용과 형식도 정확하게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우리나라에서 주6으로서의 『사분율(四分律)』이 유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사분율(四分律)』의 유통 배경과 영향에 남산율종(南山律宗)의 도선(道宣)이 자리하고 있었고, 도선의 저술과 주석서도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도선의 저술에 대한 주석서가 다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질 정도로 남산율종과 도선의 영향이 상당하였다는 점도 지인의 『사분율육권초기(四分律六卷抄記)』라는 주석서의 존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